갑각류 크리스천 : 화이트 편 - 딱딱한 형식의 껍질 속에 불안한 속살을 감춘 갑각류 크리스천
옥성호 지음 / 글의온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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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반가운 시리즈, 갑각류 크리스천 화이트를 드디어 만났다.

이보다 재밌는 책 시리즈가 또 있을까?
논픽션 가운데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옥성호 작가의 책을 꼽을 것이다.
딱딱한 글을 잘 읽지 못하는 필자이지만 이 책만큼은 만화책 속도다.
그만큼 재미있고 가독성이 뛰어나다.

갑각류 블랙(2013년)과 화이트(2022년) 사이에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옥성호 씨의 말대로라면 원래는 “블루”였어야 했는데, “진리 해부”라는 제목으로 화이트 편이 이미 나와버렸기 때문에 순서상 “화이트”를 이번에 넣었다고 한다.
화이트면 어떻고 블루면 어떤가! 😄
갑각류 시리즈야 말로 가장 유익하면서도 필요한 책이다.
신앙생활 내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감히 질문을 하지 못했던 내 옛 모습에 위로와 힘을 준 책이기도 하다.
"닥치고 믿어"라는 신앙에 그야말로 반기를 든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질문들까지 제공한다.

"와 이런 일도 있었어?"라고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노라면 정말 내가 믿었던 것들이 이렇게 허술할 수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갑각류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1. 호흡이 짧아서 좋다.
옥성호씨가 다루는 전문서적들도 상당히 좋다. 한 가지 주제로 책 한 권 내는 책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갑각류 블로그형 글도 정말 좋다.
사실, 블로그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이제껏 블로그 형식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내용의 부실함 때문이다.
정말 블로그에서나 볼 법한 글인데 굳이 책을 만들어서 속은 기분이 든 적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챕터마다 내용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알짜배기 내용들만 들어있다.

오히려 요즘 MZ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부끄럽지만 필자 역시 워낙 미디어나 젊은 세대들에 함몰되어 그런지 짧은 걸 선호하게 됐다.
과거엔 안 그랬는데 영화도 2시간 넘어가면 좀이 쑤신다.
갑각류는 이런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짧고 강한 호흡이 있다.
짧다고 해서 내용이 얇지 않다. 글에는 분명한 논조와 근거가 있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2. 두번째는 역시 정보다. 웬만한 신학서적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풍부한 내용과 링크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정보는 팟캐스트다. 그렇게 많은 팟캐스트를 듣는데도 현재 일어나는 뉴스를 복음주의 시각으로 보는 팟캐스트가 있는 줄 몰랐다. p64


알버트 몰러의 “ The briefing”은 이 책 소개 이후로 간간히 듣는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팟캐스트가 있는 줄도 몰랐을것이다.
이 외에도 옥성호씨가 남긴 흔적들을 따라가면서 좋은 책들을 줍줍 하는 재미가 있다.

3. 역시나 반가운 각주!
역시 옥성호씨는 각주를 빼놓을 수 없다.
가끔씩 각주에 빠져서 책 내용보다 더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각주를 꼼꼼히 살펴봤다.
옥성호 작가님 제발 각주 많이 많이 달아주세요 ㅠㅠ

4. No man is an island.

10장 [인격적 만남이 제일 쉬웠어요]. 이런 챕터야말로 내가 원했던 내용이다.
그냥 닥믿 신앙인들에게는 아주 사탄적인, 불경한 생각일 것이다.
(내 주위에도 옥성호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다. 이런 주장이나 내용들은 국내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참 고맙다.
You are not alone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야.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옥성호씨 책을 읽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용기를 내 소리를 내주는 저자가 참 고맙기만 하다.
재미와 공감, 그리고 유익한 정보까지 이렇게 좋은 책은 만나기 힘들다.

굳~~ 이 이 책의 단점을 꼽으라면,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중간에 메모도 못하고 술술 넘어가 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소 N차 정독을 해야 한다.
가끔 저자가 제기한 의문점들을 보면서 '음... 좀 너무 가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익한 화두라 단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다.

큰일 났네... "블루"는 언제 또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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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가벼운 고통 + 성경 필사 노트 (욥기) 세트 - 전2권 - 까닭 없는 고통의 이유를 찾는 욥기 속 차가운 랩소디 성경 속 인문학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글의온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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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욥기는 조작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만약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진짜로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신앙할수 없다.
인간보다 타락한, 그리스&로마 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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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가벼운 고통 + 성경 필사 노트 (욥기) 세트 - 전2권 - 까닭 없는 고통의 이유를 찾는 욥기 속 차가운 랩소디 성경 속 인문학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글의온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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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옥성호 씨의 신작 


평소 욥기에 대한 옥성호씨의 생각은 다른 책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정하고 욥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이유는 

그 자신이 욥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랬으리라. 


"고통"에 대한 책은 예전에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필립 얀시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부터 존 파이어 [하나님은 어떻게 악을 이기셨는가],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 등을 보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주석에 불과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우리의 다짐을 굳건히 하려면

고통 역시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해석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 

고통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성경은 무엇인가? 

단연 욥기서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1장부터 읽다가 점점 인내가 사라진다.

갑자기 등장하는 엘리후의 책망과 하나님의 동문서답부터가 항상 문제였다. 

그래도 애써 겸손한 척 했다.

"아... 역시 하나님은 오묘하신 분이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인정하라는 뜻이구나."

은혜로 넘겨버렸다.


허나 [너무도 가벼운 고통]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이건 내 지식과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제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천재라도, 믿음이 투철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가진 번역본으로 욥기를 보면 이해하기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1.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 욥기


이제까지 옥성호 씨는 기독교에서 정말 중요한 교리를 비판해 왔다. 

부활론이나 기독론, 모세오경 같은 것들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는 아니다. 

영혼과 구원에 관한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추상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에 가깝다. 

하지만 욥기는 다르다. 

어느 누구도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구체적이며, 딱딱한 교리보다 실천적인 삶에 가까운 주제다. 

그래서 욥기를 보는 우리의 자세는 더욱 정직해야 한다. 
우리의 상식과 양심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양심에 정직하게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교리라는 벽 뒤로 숨어버릴 것인가? 


2. 이쯤 되면 번역가들 얼차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욥기의 최대 배신자는 "번역가"들이다. 

얼마나 번역본의 배신을 느꼈냐면 이 책을 보고난 후 크리스천들이 가장 불쌍해졌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엉터리 번역본으로 이제까지 믿었다는 게 불쌍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성경 원본 자체의 의미만 잘 전달되었어도 지금처럼 왜곡된 기독교를 믿지는 않았을 텐데… 
오로지 모순을 감추기에 급급한 신학교도 큰 문제지만 

번역을 엉터리로 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준 번역세대들에게도 큰 문제다.


번역이 가진 결점 때문에 기독교는 철저하게 욥을 오해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 속에 만들어진 욥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번역본을 온전한 성경으로 믿고 예배해왔다. 
너무 허망하다. 

그나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가 열풍이 불었을 때 그 열풍에 휩쓸리지 않았던 건 다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시지]는 소설이지 성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고 난 후, 이제까지 가졌던 욥기의 교훈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없다. 


3. 교회 리더십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


옥성호 씨가 풀이한 욥기서는 교회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줄 것이다. 
설령 옥성호 씨가 제기한 주장들이 반만 맞았다 할지라도 

나머지 절반만으로도 가히 충격적일 것이다.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욥은 없다.
교회가 왜 욥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을까?

첫번째로, 무조건 예수 십자가와 연결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듯하다. 

그러기에 구약은 너무도 많이 의미가 변질되어버렸다. 

두번째로, 교회 안에는 깨지 못한 침묵의 카르텔이 너무 많다. 
아름답고 화려한 십자가에 너무 꽂혀서 그것과 조금이라도 핀트가 빗나간 것이라면 이단이라 치부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교회의 잘못이고, 신학교 교수들의 잘못이고, 목사들의 잘못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무지한 잘못이다. 
우매한 성도들을 아직도 조종하고 있는 교회 사역자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점 

1. 왜? 왜 성경 필사 노트를 별책으로 주었을까? 
나에겐 전~혀 필요 없는 필사 노트.

심지어 저자가 본문에서 계속 지적하는 게 번역의 문제점 아니었던가?

그런데 "필사 노트"를 부록으로 주다니??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정말 필요가 없어서 책만 따로 사려고 했는데 온라인으로는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해서 구분해서 구입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욥기를 필사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말 옥성호 씨는 독자로 하여금 필사를 하면서 “깨닫기를” 바란 것일까? 
옥성호 씨가?  
차라리 책만 팔고 책값을 2,3천 원 저렴하게 팔았으면 좋았을 것을… 

2. 옥성호 씨! 왜 각주로 안 하고 미주로 책을 만들었어요??
이제껏 옥성호 씨의 책은 거의 다 각주로 부연설명을 해왔다. 

그래서 굳이 뒷 페이지를 찾을 필요 없이 바로바로 부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엔 너무 안타깝게도 미주로 부연설명을 해버렸다. 
옥성호 씨 본인도 미주가 아닌 각주가 독자에게 더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왜 각주로 안 해줬을까?
그의 부연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데 이래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덕분에 열심히 책갈피 해가며 책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읽어버렸다.

제발 다음부터는 각주로 책을 만들어주세요!!


3. 소설과 역사 사이

항상 옥성호 씨를 비판하는 내용 중 하나가 이것이다.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지 않고 소설처럼 빈 공간을 마음대로 지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 스토리 상 공백인 부분에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한 티가 많이 났다.

물론 그 시도가 아예 불합리하거나 말도 안 되는 비약적 논리는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빈 공간을 메우지 않으면 더 이상 스토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어버리면 이 역시,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욥의 침묵으로 하나님이 초조해한다고 단정 짓는" 다거나 "주변 천사들이 지겨워한다"거나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 아쉽다.



🎁 누가 양심적인가?


옥성호 씨가 변질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봐선 그래 보인다.

과거 보수신학의 정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왕팬이라고 자처했던 사람이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거룩한 분노로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성경 자체를 아예 난도질하고 있다. 

누가 봐도 변절자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옥성호 씨는 과거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 편](2013) 서문에서 스님들의 대화를 인용한 적이 있다.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p6
스님의 대화를 상기시키면서 옥성호 씨는 불변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최전선으로 갔다.
그는 그의 다짐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그는 옛날에도, 지금도 양심을 따라가고 있다. 

비록 양심을 따랐을 때 미궁을 맞이해야 하지만, 기독교 교리라는 편리하고 안락한 온실에 머물지 않았다. 
나 또한 그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나도 이 길의 끝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신앙이라는 불합리 속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욥기는 그야말로 가장 양심적으로 봐야 할 책이다. 

욥처럼 하나님께 대들면서 정직하게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국 욥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 

욥이 했던 행동은 양심을 따라한 행동이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신앙을 가졌을 땐, 예수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안 믿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과연 누가 눈이 어두운지는 이 책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욥기는 차라리 판타지 소설 창작물이어야 한다. 

차라리 이 욥기는 조작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옳다.

만약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진짜로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신앙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냥 거대한 힘에 유린당하는 장난감일 뿐이다. 

심심해서 개미 몸통을 자르고, 물에 붓기도 하고,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 수준의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한단 말인가?

누구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할 것이다. 

차라리 욥기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고통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인간보다 타락한, 그리스로마 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을 예배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P.S.: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만한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개역한글)

고통 앞에 “할 만한”이라는 보조 형용사를 붙여 신앙 고백의 기회로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잔인한 종교적 폭력도 없다. P354


욥을 보고서 고전 10:13을 보니 이 구절이 엄청 무서워졌다. 

정말 고전 10:13이 진리라면 난 소망한다.

내 능력이 한없이 어리고 약하기를. 그래서 내 주위가 불행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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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리 저자, 정애리 낭독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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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차 마시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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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숲이 사라져!!
E-book으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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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anna 2020-10-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ook볼려면 폰이나 컴으로 봐야되는데 거기 들어가는 전기나 부품제조에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왜 생각 안하시죠? 숲이 사라지고 있다구요 E-Book도 보면 안되욧

카미유 2020-10-3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도서정가제로 이미 책도 못 사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