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가벼운 고통 + 성경 필사 노트 (욥기) 세트 - 전2권 - 까닭 없는 고통의 이유를 찾는 욥기 속 차가운 랩소디 성경 속 인문학 시리즈 1
옥성호 지음 / 글의온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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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옥성호 씨의 신작 


평소 욥기에 대한 옥성호씨의 생각은 다른 책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정하고 욥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이유는 

그 자신이 욥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랬으리라. 


"고통"에 대한 책은 예전에도 읽은 기억이 있다. 

필립 얀시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부터 존 파이어 [하나님은 어떻게 악을 이기셨는가],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 등을 보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주석에 불과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우리의 다짐을 굳건히 하려면

고통 역시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해석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 

고통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성경은 무엇인가? 

단연 욥기서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1장부터 읽다가 점점 인내가 사라진다.

갑자기 등장하는 엘리후의 책망과 하나님의 동문서답부터가 항상 문제였다. 

그래도 애써 겸손한 척 했다.

"아... 역시 하나님은 오묘하신 분이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인정하라는 뜻이구나."

은혜로 넘겨버렸다.


허나 [너무도 가벼운 고통]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이건 내 지식과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제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천재라도, 믿음이 투철한 사람이라도 우리가 가진 번역본으로 욥기를 보면 이해하기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1.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 욥기


이제까지 옥성호 씨는 기독교에서 정말 중요한 교리를 비판해 왔다. 

부활론이나 기독론, 모세오경 같은 것들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는 아니다. 

영혼과 구원에 관한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추상적이고 교리적인 내용에 가깝다. 

하지만 욥기는 다르다. 

어느 누구도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구체적이며, 딱딱한 교리보다 실천적인 삶에 가까운 주제다. 

그래서 욥기를 보는 우리의 자세는 더욱 정직해야 한다. 
우리의 상식과 양심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양심에 정직하게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교리라는 벽 뒤로 숨어버릴 것인가? 


2. 이쯤 되면 번역가들 얼차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욥기의 최대 배신자는 "번역가"들이다. 

얼마나 번역본의 배신을 느꼈냐면 이 책을 보고난 후 크리스천들이 가장 불쌍해졌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엉터리 번역본으로 이제까지 믿었다는 게 불쌍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성경 원본 자체의 의미만 잘 전달되었어도 지금처럼 왜곡된 기독교를 믿지는 않았을 텐데… 
오로지 모순을 감추기에 급급한 신학교도 큰 문제지만 

번역을 엉터리로 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준 번역세대들에게도 큰 문제다.


번역이 가진 결점 때문에 기독교는 철저하게 욥을 오해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 속에 만들어진 욥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번역본을 온전한 성경으로 믿고 예배해왔다. 
너무 허망하다. 

그나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가 열풍이 불었을 때 그 열풍에 휩쓸리지 않았던 건 다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시지]는 소설이지 성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고 난 후, 이제까지 가졌던 욥기의 교훈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없다. 


3. 교회 리더십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


옥성호 씨가 풀이한 욥기서는 교회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줄 것이다. 
설령 옥성호 씨가 제기한 주장들이 반만 맞았다 할지라도 

나머지 절반만으로도 가히 충격적일 것이다.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욥은 없다.
교회가 왜 욥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을까?

첫번째로, 무조건 예수 십자가와 연결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듯하다. 

그러기에 구약은 너무도 많이 의미가 변질되어버렸다. 

두번째로, 교회 안에는 깨지 못한 침묵의 카르텔이 너무 많다. 
아름답고 화려한 십자가에 너무 꽂혀서 그것과 조금이라도 핀트가 빗나간 것이라면 이단이라 치부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교회의 잘못이고, 신학교 교수들의 잘못이고, 목사들의 잘못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무지한 잘못이다. 
우매한 성도들을 아직도 조종하고 있는 교회 사역자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점 

1. 왜? 왜 성경 필사 노트를 별책으로 주었을까? 
나에겐 전~혀 필요 없는 필사 노트.

심지어 저자가 본문에서 계속 지적하는 게 번역의 문제점 아니었던가?

그런데 "필사 노트"를 부록으로 주다니??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정말 필요가 없어서 책만 따로 사려고 했는데 온라인으로는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해서 구분해서 구입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욥기를 필사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정말 옥성호 씨는 독자로 하여금 필사를 하면서 “깨닫기를” 바란 것일까? 
옥성호 씨가?  
차라리 책만 팔고 책값을 2,3천 원 저렴하게 팔았으면 좋았을 것을… 

2. 옥성호 씨! 왜 각주로 안 하고 미주로 책을 만들었어요??
이제껏 옥성호 씨의 책은 거의 다 각주로 부연설명을 해왔다. 

그래서 굳이 뒷 페이지를 찾을 필요 없이 바로바로 부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엔 너무 안타깝게도 미주로 부연설명을 해버렸다. 
옥성호 씨 본인도 미주가 아닌 각주가 독자에게 더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왜 각주로 안 해줬을까?
그의 부연설명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데 이래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덕분에 열심히 책갈피 해가며 책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읽어버렸다.

제발 다음부터는 각주로 책을 만들어주세요!!


3. 소설과 역사 사이

항상 옥성호 씨를 비판하는 내용 중 하나가 이것이다.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지 않고 소설처럼 빈 공간을 마음대로 지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 스토리 상 공백인 부분에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한 티가 많이 났다.

물론 그 시도가 아예 불합리하거나 말도 안 되는 비약적 논리는 아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빈 공간을 메우지 않으면 더 이상 스토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어버리면 이 역시,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욥의 침묵으로 하나님이 초조해한다고 단정 짓는" 다거나 "주변 천사들이 지겨워한다"거나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아 아쉽다.



🎁 누가 양심적인가?


옥성호 씨가 변질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봐선 그래 보인다.

과거 보수신학의 정점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왕팬이라고 자처했던 사람이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거룩한 분노로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성경 자체를 아예 난도질하고 있다. 

누가 봐도 변절자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옥성호 씨는 과거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 편](2013) 서문에서 스님들의 대화를 인용한 적이 있다.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p6
스님의 대화를 상기시키면서 옥성호 씨는 불변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최전선으로 갔다.
그는 그의 다짐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그는 옛날에도, 지금도 양심을 따라가고 있다. 

비록 양심을 따랐을 때 미궁을 맞이해야 하지만, 기독교 교리라는 편리하고 안락한 온실에 머물지 않았다. 
나 또한 그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나도 이 길의 끝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신앙이라는 불합리 속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욥기는 그야말로 가장 양심적으로 봐야 할 책이다. 

욥처럼 하나님께 대들면서 정직하게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국 욥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 

욥이 했던 행동은 양심을 따라한 행동이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신앙을 가졌을 땐, 예수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안 믿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과연 누가 눈이 어두운지는 이 책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욥기는 차라리 판타지 소설 창작물이어야 한다. 

차라리 이 욥기는 조작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옳다.

만약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진짜로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신앙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냥 거대한 힘에 유린당하는 장난감일 뿐이다. 

심심해서 개미 몸통을 자르고, 물에 붓기도 하고,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 수준의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한단 말인가?

누구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이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할 것이다. 

차라리 욥기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고통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인간보다 타락한, 그리스로마 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을 예배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P.S.: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만한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개역한글)

고통 앞에 “할 만한”이라는 보조 형용사를 붙여 신앙 고백의 기회로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잔인한 종교적 폭력도 없다. P354


욥을 보고서 고전 10:13을 보니 이 구절이 엄청 무서워졌다. 

정말 고전 10:13이 진리라면 난 소망한다.

내 능력이 한없이 어리고 약하기를. 그래서 내 주위가 불행하지 않고 모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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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요약발췌본]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저자, 정애리 낭독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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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차 마시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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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똑똑교양 1
최원형 지음, 이시누 그림 / 책읽는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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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숲이 사라져!!
E-book으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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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anna 2020-10-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ook볼려면 폰이나 컴으로 봐야되는데 거기 들어가는 전기나 부품제조에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왜 생각 안하시죠? 숲이 사라지고 있다구요 E-Book도 보면 안되욧

카미유 2020-10-3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도서정가제로 이미 책도 못 사봄요
 
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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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아껴보고 싶은 작가 - 찬호께이

평소 돈을 잘 쓰지 않는 편이지만 책만큼은 빌리지 않고 직접 사 읽는다.
다행히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서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해서 읽는 편이다.
그런데 책 중에서도 바로바로 새 책을 사야만 하는 게 있다.
바로 찬호께이의 작품들이다.
도저히 중고책으로 나오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이제까지 한스미디어에서 번역되어 나온 모든 책들은 다 읽어버렸다.
워낙에 취저 작가라 이름에 믿음이 간다.
과연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명실상부한 작품일까?



우선,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다.
장편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이 두꺼운 이유는
지난 10년간 그가 간간히 썼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는 데 불현듯 “데이비드 크라우더 밴드” 앨범 [Give us rest](2012)가 생각났다.
만들다 만(?) 짧은 곡들이 주를 이루지만 메인이라고 여겨지는 굵직한 곡들이 사이사이에 배치되어있다.
그래서 이번 [디오게네스 변주곡]을 볼 때 그 앨범이 생각났다보다.
굵직한 단편소설들이 사이사이에 껴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다.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찬호께이만의 독특한 반전이 살아 숨쉰다.
정말 첫 챕터부터 뒤통수가 시큰거린다. 찬호께이의 반전은 보통 반전과 다르다.
앞에서 적이 다가올 것을 예상했는데 결국 내 옆 건물을 빙 돌아 내 뒤를 몽둥이로 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뒤통수가 어이없거나 위화감이 전혀 없다. 당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소름이 끼친다.

(찬호께이는 정말 진짜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도덕과 법의 경계를 정말 예리하게 써 나간다.
이런 줄타기는 그의 장편소설 [13.67]에서도 느꼈다.
주인공은 깨끗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범인을 잡지 않는다. 어찌보면 같은 진흙탕 싸움이다.
하지만 그런 싸움 속에서도 분명한 건 우리 편이 이겼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희미하나마 “정의”가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찬호께이의 방식이 완전 마음에 든다.

사실, 중간중간 별로 와닿지 않은 스토리들도 꽤 있다.
머리위에 괴물이 보인다는 스토리는 추리도 아니고 장르가 낯설어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몇 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작은 스토리도 완성도가 높다.

상당히 모험적인 소재를 많이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신선한 파일럿 프로그램 같은 이야기이다.
90년대 영화에서 봤을 법한 소재들이지만 찬호께이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했다.
[시간이 곧 금] 같은 소재가 그런 예이다.
(하지만 결말은 비추...찬호께이는 절대 로맨스는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반전이 있었지만 그 반전이 시원찮으면 그것만큼 시간이 아까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숨어 있는 X>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챕터.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에 실망한 이가 혹시라도 있다면 이 챕터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챕터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말대로 밝고, 경쾌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챕터였다.
[풍선인간]처럼 단편을 좀 더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그나저나 확실히 찬호께이 인기가 높은 가보다.
보통 작가였으면 상상할 수 없는 "단편모음집"이 나왔으니 말이다.
메모에 불과한 이야기 모음집을 작가 이름만으로 열광하면서 읽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런데 재밌는 걸 어떡해!!!!!

하지만 다음 작품은 정식장편소설이어야 한다.
단편집도 재밌지만 장편소설만의 큰 이야기도 엄청 재밌으니까 말이다.

찬호께이의 팬이라면 반드시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은 [디오게네스 변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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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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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맨 처음과 맨 뒤 챕터만으로도 책을 구매할 가치가 있다.
장편이 아니라 너무 감질맛나서 별 네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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