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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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의 분위기 때문에 덥석 고르게 된 책이었어요. 물론 책을 고를 때 제목과 표지를 중요시 여기긴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책을 선택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읽기 전부터 어떤 내용의 책인지 몹시 궁금했어요. 하지만 제가 상상했던 책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우스꽝스러워지지 않고는 깜짝 놀랄 일을 이룰 수 없다. 전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를 알아야만 해요. '조르주 바타유' 작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그의 작품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조르주 바타유는 매독 환자에 맹인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평생 사서로 일하면서도 매음굴을 전전하며 에로티즘 소설을 썼고 생전에는 '저주의 작가'로 취급받으며 평가절하 당하기도 했지만, 사후에 여러 젊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기 전에 <눈 이야기>라는 전작을 읽으시길 권해드릴게요. :)


이 작품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인물과 스토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빛>은 유럽 전역의 역사상 가장 혼돈기에 가까웠던 1930~1940년대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에 눈뜨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며 모든 것들이 서로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진 작품일수록 역사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후 2시쯤 난 카루젤 다리 위에 있었다. 파리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로 도살장의 소형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죽을 벗긴 양들의 머리 없는 목들이 천 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있었고,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를 넣은 백정들의 작업복은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했다. 트럭은 쨍쨍한 햇빛 속을 느릿느릿 지나갔다.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을 좋아했다. 두 눈을 감으면 눈꺼풀 너머의 태양은 붉은색이었다. 태양은 무시무시했고, 폭발할 것 같았다. 태양이 폭발하여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아스팔트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보다 더 태양다운 것이 있을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빛에 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내 앞의 라자르는 그저 한 마리의 흉조, 더럽고 하찮은 한 마리의 흉조에 불과하게 되었다. 내 두 눈은 실제로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 속으로가 아니라 정오의 하늘의 푸른빛 속으로 잠겨들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트로프만'은 이름부터가 뜻이 남다릅니다. '너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와 '인간'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합해져 만들어진 이름인데요. 이름답게 남보다 많이 가진 부르주아로서 글을 쓰는 인텔리의 의무보다는 술과 향락에 물들고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며, 정치나 사상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시대의 요구와 반향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소설 속에서 뚜렷한 분쟁은 드러나지 않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끊이지 않습니다. 트로프만은 시체에게서 성욕을 느끼고, 변태성애자 난봉꾼인 '잉여 인간'이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서 죽음을 사랑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는 트로프만 이외에도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부르주아로서의 권리와 향락에 취해 자유를 만끽하는 트로프만의 사랑이자 뮤즈인 '디르티',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투사이면서도 트로프만에게 두려움을 주는 '라자르', 부르주아로서 자신이 가진 걸 나눠주는 게 부르주아의 의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크세노'. 아내가 있음에도 트로프만은 작품 내내 이 세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회의 위태로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트로프만은 즐거움에 탐닉하고, 일상의 권태로움에 그저 빠져있습니다.



"전날만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도시의 호텔방을 향해 서둘러 갔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며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길을 돌아서는 순간 빈 공간이 우리 발아래로 펼쳐졌다. 이상하게 그 빈 공간은 우리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만큼이나 무한해보였다. 무수히 많은 작은 빛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별들, 촛불들은 땅 위에서 수백 개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땅 위에는 환하게 밝혀진 묘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나는 도로테아의 팔을 잡았다. 우리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별들의 심연에 매혹되었다."

<하늘의 푸른빛>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단연코 디르티와의 정사 장면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이념의 차이로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는데 호화로운 호텔 안에서 그들의 전쟁을 관람하며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나면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어지지만 이 장면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핵심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전운이 감도는 사회 안에서도 나는 나만의 일을 하고,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총체적으로 이 작품은 한 남자가 죽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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