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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h 러쉬! - 우리는 왜 도전과 경쟁을 즐기는가
토드 부크홀츠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토드 부크홀츠는 90년대에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을 전공하던 언니가 대학 신입생일 무렵부터 이 책이 줄곧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었고 나도 몇 번 들춰보긴 했지만 끝까지 읽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 역시 특별히 관심을 두던 책은 아니었지만, 추석 귀향길에 KTX 서점을 둘러보다가 저자의 이름이 눈에 띄어서 사 보게 되었다.
경쟁의 미덕에 대한 칭송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지만, "비판적 지식인"의 서재에 그런 류의 주장을 펼치는 책을 꽂아두는 것은 그리 뽀대나는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런 조류에 맞서 저자는 뇌과학, 인류학, 경제학에 기반하여 경쟁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지적으로 펼쳐보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저자의 주장은 대략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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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경쟁이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병폐를 비난하며 '순수했던 원시적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지식인들을 '에덴주의자'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 '낭만적 주장'을 비난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 낭만주의자들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슈마허, '과시적 소비'의 개념을 주창한 소스타인 베블런, 사모아 부족의 평화적 심성을 찬양한 마거렛 미드 등이 포함되는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고귀함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현대 사회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를 오염시켰다고 주장하며, 명예와 정직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이 서구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곳에서만 살아남아 있다고 역설"한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비판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1) 인간이 관련된 체제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더 오래 지속되는 체제는 경쟁을 하는 체제이다.
2) 우리는 결코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이는 설사 에덴이 존재한다 해도 그동안 진화한 인간이 그와 같은 낙원엔 더이상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3) 사실 무언가를 손에 쥐려는 탐욕은 얍삽한 상인들이 교묘한 광고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천박한 물질주의에 의해 빚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이 쾌락의 러닝머신 위에 올라탄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일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들어주며, 일에서의 성공은 보람을 안겨주고,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킬 가능성을 높여 준다.
4) 끝으로 이런 경쟁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면,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지금 죽어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저자는 특히 뇌과학을 끌어와서 경쟁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진화를 통하여 인간에게는 전두엽이 생겨났는데, 전두엽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유리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전두엽은 우리에게 미래를 위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뇌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전두엽 이후의 사회에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숙고하고 계획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경제체제가 행복을 위한 최선의 경제체제이다. 자유 경쟁의 경제체제는 인간의 욕구와 야망을 인정하고 환영하므로 우리의 진화된 뇌에 알맞다.
또한, 기존의 연구는 뇌에서 다른 신체기관으로 신호를 보내어 인간을 움직일 수 있게 한다고 보았지만, 윌리엄 제임스나 폴 에크먼과 같은 심리학자는 외부의 자극이 뇌에 신호를 보내고, 그 다음 뇌가 충동을 느껴 다시 신체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스키너와 같은 행동주의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에 의해 타당성이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로 하여금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옥시토신, 엔도르핀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우리의 행동, 외부 자극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체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활동과 경쟁을 일깨우는 사회가 우리의 뇌를 깨우고, 정서적인 힘의 새로운 원천을 일궈낼 수 있는 사회이다.
'에덴주의자'들은 삶의 불안은 탐욕에서 비롯된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그런 경쟁을 제약하고 삶의 불안을 제거한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인간은 불안을 피하지 않고 제어할 수 있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끼며, 자유가 박탈된 상태보다는 선택의 압박이 존재하더라도 자유가 존재하는 상태를 더 선호한다. 경쟁이 탐욕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보다 오래 일을 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성공에 수반되는 심리적 성취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 비치 클럽에서 웨이터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생래적으로 부러운 감정을 갖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러한 부러움은 인간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다른 이가 얼마만큼 나아갔는지 민감한 덕에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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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자아실현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좀더 생존에 적합하게 진화시킨다는, 다소 반복적인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알겠고 굳이 새롭지도 않다. 참신해 보이는 학문적 소재들과 엮어내려는 시도에는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전개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작 부분에서는 꽤나 흥미를 가지고 읽어내려가다가 끝으로 갈 수록 실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좀 아니꼬운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100만 원짜리 과외 선생 달고 공부해서 전교 1등한 애가 사교육 받을 기회가 없어서 성적이 안 좋은 친구에게 노력도 안 하면서 성적 안 나온다고 징징대지 말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반감을 갖게 된다. 첫째로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책 중에서 가장 경멸조로 언급하고 있는 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인 것 같은데(아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었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마 저자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에서 도피해서 자연 속에서 명상을 하며 아무런 경제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굶어 죽거나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싶다면 그런 삶을 원하라는 식이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일과 휴식의 조화를 꿈꾸는 소박한 열망이 왜 그런 식으로 매도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둘째로는, 저자가 지나치게 리버태리어니즘에 경도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저자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경쟁 사회에서 위계질서는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 뿐이다. 자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약을 가하는 논의는 대체로 공산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한다. 일을 통한 자아 실현은 둘째치고 삶의 기본적인 조건조차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가령 '노동의 배신' 같은 책을 읽은 후 저자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그냥 어쩔 수 없다는 거?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결국 조상 때부터 경쟁에 도태된 결과이니 그냥 그렇게 살라는 거? (참고로 저자는 부잣집 아들래미로 태어나서 경제학으로 박사를 딴 것도 모자라 - 다분히 경력 장식용 학위 취득으로 보이는 - 하버드 로스쿨까지 졸업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여러 모로 실망스러운 면이 많지만, 나름 재밌는 부분도 많아서 읽었다고 해서 시간이 무지 아깝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공병호 이지성 류의 책보다 세련된 자기계발서를 원하는 사람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SERI에서 CEO가 여름 휴가 때 읽으면 좋을 책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재로 삼고 있는 여러 학문적인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는 책들에 대한 연쇄적 독서로 잘 나아간다면, 책값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제일 읽어보고 싶은 책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 찰스 다윈 자서전과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