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위기
앨 고어 지음, 안종설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너무 똑똑한 것이 흠이 되어(한마디로, 혼자서 다 아는 척 하니 재수 없다는 거다;)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부통령 앨 고어의 최신작. 미국이 세계의 지도 국가로서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국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위기 상태에 봉착했음을 지적하는 책들은 시중에 꽤 많이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앨 고어는 그와 같은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공론장'이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앨 고어가 지칭하는 민주주의는 하버마스로부터 이어져 미국의 공화주의(not 공화당) 정치이론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심의민주주의이다. 즉,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이성에 토대를 둔 각자의 견해를 자유롭게 펼침으로써,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다다를 수 있고, 그와 같은 의사결정이 법이 되어 국민에 대한 통치 규범으로 작동한다는 바로 그 심의민주주의 말이다.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보 내지는 의견의 수용과 공개 양 측면에 있어서 진입장벽이 없어야 한다.

둘째, 이념의 운명은, 그 이념의 우수성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

셋째. 참여자들은 모두 일반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무언의 임무를 자각하여야 한다.

 

 앨 고어가 봤을 때 미국 헌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만 해도, 위와 같은 조건은 나름대로 충족되어 있는 편이었다(과연 그랬는지는 좀 의문이기는 함). 그러나 TV와 같은 매스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정보와 의견은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으로만 소통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매스 미디어를 재벌 기업과 같이 고소득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세력이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이념의 운명이 그 이념 자체의 우수성이 아닌, 그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방송 시간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 또한 재선을 위해서 의정활동보다는 유세에 활용할 TV 광고 방송 시간을 구매하기 위한 스폰서를 찾기에 급급하다.

 

 이와 같이 공론장이 와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시 집권 이후에는 법의 지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권력 분립 또한 부시 행정부의 노골적인 헌법과 대법원 판결 무시에 의하여 약화되었다(법원에 의한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도청, 서신 검열 등을 할 수 있는 각종 명령의 제정, 탈법적인 방식으로의 법률안 서명 -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법률의 일부에 대하여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명의견'을 통하여 나는 이 법의 이러이런 조항들의 취지엔 찬성 안 한다는 의견을 덧붙이는 식;- 등).

 

 위와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한 최악의 사태로 앨 고어는 이라크 전쟁을 꼽으면서, 이라크 전쟁을 결정하기까지 부시 행정부가 저지른 과오와 그 상황에서 누구도 적절한 비판을 가하지 못했던 미국 사회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조금은 충격적으로 들렸는데,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이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아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어가 보기엔 부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걸 모를만한 정도의 바보가 아니라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고, 또 이미 CIA 등을 통하여 알 카에다와 이라크는 별개임을 수차례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다수의 비판자들이 말하듯이- 자신의 지지층인 석유 재벌들에게 안정적인 석유를 공급해 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대하여 국민들이 '이성에 근거를 둔 비판'을 하는 것이 봉쇄되도록, 9.11 사태 직후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통하여 "이라크 = 알카에다 = 미국에 대한 위협"임을 주입시킴으로써 이성을 공포로 대체시켰으며, 또한 이를 공화당의 선거에 적극 활용했다. 9.11의 공포에 사로잡혔던 미국 국민들은 너무 쉽게 부시에게 넘어가버렸고 말이다. 고어는 탄소 위기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관하여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한다.

 

 그러면 이성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답은 이미 위에 나와 있다. 공론장과, 법의 지배의 회복이다. 조금 뻔하기는 한데, 일방적이고, 소수에 의하여 장악된 TV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소통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와 같은 희망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 스스로도 UCC 개념의 www.current.tv와 같은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법의 지배 회복 문제야, 1차적으로는 집권 행정부의 도덕성에 호소할 문제이므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이렇게 거칠게 내용을 요약해놓고 보니 내용이 좀 빤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논지가 분명하고 똑똑하게 쓰여져 있어서 읽는 맛이 꽤 있었다. 방송법 개정 찬성론자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물론 우리나라의 공론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읽는다 한들 별 소용은 없겠지만;). 게다가 이 양반 오랫동안 의원 생활을 해 온 내공으로 워낙 미국 헌법에도 정통해서, 심의민주주의, 법의 지배, 권력 분립, 표현의 자유 등등 각종 헌법적 테마들에 대한 Founding Fathers의 설명(주로 '페더럴리스트'에 실린 것들), 주요한 연방대법원 판결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그 쪽에 관심이 좀 있었던 나로서는 좀더 읽는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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