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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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간–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는 부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간적 여유의 효용과 의미를 다룬 책이다. 사실 스피드에 지친 요즘 세대에게 이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주제일 수 있다. 요즘은 서가에서도 티비에서도 그들에게 유행 같은 위로를 전하지 않는가. 워낙에 위로 컨텐츠가 유행하다보니 누군가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단순 힐링 에세이로 치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시간』은 멍 때리는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염불 외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느림’을 마냥 옹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컨텐츠의 내용과 분명히 구별된다.

사실 느리게 살기 운동이 전파하는 속도 줄이기의 이념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안적인 주장은 우리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 낼 뿐이다. 느림은 그 자체로는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9쪽

위 문장에 암시된 것처럼 기르스트의 실질적 지향은 내면 성찰과 성실하고 촘촘한 설계이며 느림, 즉 다량의 시간은 둘을 위해 필요한 재료일 뿐이다. 나는 목차 중 「스프레자투라」 편에서 해당 메시지를 보다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필자는 이탈리아어인 ‘스프레자투라’를 “가식이나 치장 없이 힘들이지 않고 자신을 내보이는 태도”(106p)로 해석하며 우리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내면의 진정한 균형과 평온함”(107p)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의 해석처럼 스스로를 기교 없이 드러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을 세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미지의 영역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시간을 들여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 약점을 인정하고 지향에 매달리다 보면 내면의 균형과 평온은 자연히 따라올 테다. 결국 성찰의 시간은 진정한 회복과 휴식의 시간이며 진보의 바탕이 되기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느림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기르스트는 말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와 자존감은 아주 핫한 키워드이다. 모두 무심해보이지만 잘 나온 사진만 골라 SNS에 업로드하고 자존감 높이는 법을 제목으로 단 영상들이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기르스트라면 이 현상을 스프레자투라를 지향하지만 성찰이 없는 세대가 겪는 괴리로 설명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의문스럽기만 했던 주변 세계가 조금씩 명료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시간』은 공허한 위로보다 정확한 통찰과 방향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 용어와 예술 작품, 과학 실험 등 다양하고 신선한 예시 속에서 반복 변주되는 주제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간과 그 쓰임이라는 주제어를 꽉 붙들고 읽는다면 독해가 어렵지도 않다. 나는 다가오는 친구 생일을 맞아 한 권 더 구입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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