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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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밤, 김규항님의 인터뷰집,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다시 훑어읽다가 잠들었다.

(독후감을 올리려고 이것 저것 보면서 밑줄 긋고 있었음...)

 

그러다 꿈을 꿨는데.

 

꿈에서 내가 쓴(?) 또는 주장한(?) 글을,

도원이 젖 먹이려고 깼다가, 잊어먹기 전에 적어야지 해 놓고,

작은 방으로 몽유병자처럼 기어가서 끼적끼적 적어놓았다.

 

원문은, 너무 개발새발이고... 암튼 요지는,

'인간의 역사는 다수의 가치에 저항하는 소수에 의해 발전해왔다' 는 것.

 

그 문장을 키워드로 다시 되살려 낸 꿈 속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인간의 역사는 어차피 소수가 다수에 저항하면서 발전해왔다.
어느 역사에나 그 시대 주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소수의 가치에 헌신하는 소수가 있음으로 인해서 변화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도, 시민혁명도...)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사회의 엉망진창으로 느껴지는 많은 것들,

특히 직업의 안정성 + 경제적 안정성으로 연결되는 대입,

그리고 그 고리에 맞물려 미친듯이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교육 문제,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우리 사회의 '좌익'에 대한 편견도, (좌파가 왜 나쁜 건가?)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올 것을 믿는 소수가 되자.

 

정치적으로는 비판적 지지라든가 현실적으로 중도 우파에게 몰아주기로 돌아서지 말고 소신껏 찍고,

교육에 대해서는 자식의 미래를 내 기준(또는 이 사회의 비뚤어진 기준)에 맞춰 재단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가자.

남들이 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라는 변명으로 흔들리지 말자.

 

내가 읽은 김규항의 메시지는 '좌파는 좌파답게,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자답게, 각자 정체성을 제대로 찾으'라는 것과

소수부터 제대로 생각을 바꾼다면, 세상이 뒤집히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책을 읽으면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적고 싶었는데,  

저 꿈 때문에 이번 독후감은 좀 어이 없지만, 꿈 속의 게시;;; 로 마무리 되어버렸다.

(내가 미쳐가나봐... ㅎㅎ)

 

어쨌든,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나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나는 아직 몸은 자유주의자요, 머리만 좌파인 반쪽이지만,

나부터 변하고 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믿고 갈 수 있는 뭔가 기댈 구석을 얻은 기분이다.

 

이 책을 선물하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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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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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그러나 인간성을 믿는, 상식을 가진 교양인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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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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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돌아보라는 아빠의 얘기가 떠올랐다.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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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행복한 교실 - 독일을 알면 행복한 교육이 보인다 알면 보인다
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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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생활이 그립니? 나는 지겨워.  

남자들은 가끔 '군대 다시 가는 꿈 꾸고 왔다' 면서 진저리를 칠 때가 있다.
나는 가끔 '교복 입고 다시 학교 가는 꿈'을 꾸곤 한다. 군대 꿈보다야 덜 하겠지만, 그런 꿈 꾸고 난 다음 날은 기분이 그리 좋지가 않다.  

학창시절 좋은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놀고 열심히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립기도 하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학교에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줄서기와 그 때문에 괴로웠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게 된다는 게 솔직한 맘이다.   

비교적 우등생으로 학교 생활에서 성적 스트레스로 고생을 많이 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가끔 꿈에 나오는 학창시절조차 기분 좋지 않은데, 초등학교부터 전국 줄세우기를 하고 밤 늦게까지 학원에 시달려야 하는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내가 학생이던 그 시절에도 시험과 성적으로 평가하는 풍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제는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까지 전국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 세우기를 시키기 시작한 이 나라 교육계다.
다른 애들보다 뒤쳐질게 무서워서 밤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아이들을 ‘학원’ 보내고 ‘과외’시키는 사람들이 이 나라 부모들이고.  

그런 와중이니, 초등학생 꼬마가 ‘불행하다’며 목을 메고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 어릴 적 어른들이 제일 많이 하던 말, 그리고 나도 나이 들고 나서 무신경하게 많이 했던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요즘 아이들에게 던져도 좋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PISA의 학업능력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 성적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는 그 높은 학력을 본받으려 우리 교육을 모델로 삼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는데, 정작 우리나라 아이들은, 행복하다는 아이들보다 불행하다는 아이들이 더 많다.  

우리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울 수 없을까? 아이들의 성적에 따라 가정 분위기까지 달라진다는 요즘 풍조에 비춰보면, 아이들이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고, 그 구성원 역시 행복해질 수 있는 거 아닐까?  

독일로 이사 갈까? 대학 안 가도 사는데 지장 없대.  

그런 의구심에 대한 해답의 단초가 ‘꼴찌도 행복한 교실’에 담겨있다. 두 아들을 키우며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 한국 엄마가 쓴 독일의 교육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나도 당장 독일에 가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아이 낳으면 아이당 얼마 씩의 육아보조금도 나라에서 통장에 바로 쏴준다지, 의무교육이라 학교에 특별히 돈 들어갈 일 없지, 촌지 없지, 사교육도 필요 없지. 대학에 안 가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는 곳인데, 얼마나 좋을까. 당장이라도 가서 먹고 살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날아가고 싶은 이야기다.  

독일학교, 어떻길래?  

독일에는 우리나라처럼 5지선다 같이 외워서 찍어내는 시험은 없고, 어떤 과목이든 거의 ‘논술’로 학습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고 한다. 학교의 한 학년 전체가 똑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치고, 성적은 컴퓨터가 매겨주는 우리의 시험과는 달리, 각각의 담임 교사가 각자의 재량껏 시험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도록 되어있다. 시험 문제도 논술형이다 보니, 교사가 채점하는 기준도 정답이 정해져서 컴퓨터로 계산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답안을 꼼꼼히 읽고 논리와 표현은 물론이고, 문법이나 어휘까지 체크해서 평가를 하기 때문에, 독일의 선생님들은 시험 한 번 보고 나서 채점에만 몇 주를 소비해야 한다고 한다.  

학교를 가기 전에, 또는 학년이 올라가기 전에 이뤄지는 ‘선행학습’은 독일에선 꿈도 못 꾼다. 초등학교 신입생 중 ABC를 미리 알고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학교에서 선 긋기 수준의 알파벳 공부부터 시작하는데도 1학년이 끝날 즈음에는 책을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한단다. 

산수도 마찬가지. 셈하는 방법도 쉽게 익힐 수 있는 공식(세로 계산법 같은)이나 구구단을 외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익히도록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간단한 덧셈 뺄셈도 고생고생하며 오래 걸려 풀 수 밖에 없지만, 그 과정을 잘 지나게 되면 수의 개념과 원리가 아이들 머리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수준 높은 상위의 문제를 푸는데 탄탄한 기본기를 쌓게 된다고 한다.  

고학년에 되어서도 ‘예습’은 학교에서 사절이다. 미리 공부하고 와서 교사의 질문에 넙죽넙죽 정답을 말해버리는 모범생은 독일 학교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한 아이의 잘난 척이 다른 대다수 아이들의 수업 의욕을 꺾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란다. 예습 안하고 와서 질문에 대답 못하면 혼나야 하는 우리나라 수업시간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미 유치원이니 어린이집 시절부터 한글 떼고, 영어까지 줄줄 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기준에서 보면 독일의 이런 교육 시스템은 답답하리만큼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지만, 차근차근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독일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로 ‘독일제’라면 알아주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이 이런 탄탄한 기초에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닌가 싶다.  

다양한 진로 결정이 가능한 독일 사회 –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독일은 전통적으로 실용주의(누군가가 말하는 말로만 실용주의 말고)가 강한 사회다. 학교에서도 초등학교 4년 과정만 마치면 이미 각자의 진로를 정해 직업인이 될지, 대학을 가서 공부를 더 할지를 결정하게 하고, 그에 따라 진학의 방향도 달라지게 된단다. 이것이 가능한 건, 아마 독일이 학력에 의한 서열사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을 나와야 기본적인 사회 생활의 자격을 갖춘 듯이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와 달리, 독일은 많은 일터에서 대학 졸업장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직종에 맞는 교육과 현장 경험의 유무가 더 중요시되기 때문에, 머리 아프게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해서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이 더 좋은 대학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서 전전긍긍할 필요도, 학교가 대학에 몇 명 보냈는지로 평가 받을 이유도,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독일에도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같은 ‘아비투어’라는 대입시험이 있지만, 이 시험도 우리의 수능처럼 국가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는 영향력을 가지진 않는다. 아이들은 각자의 능력이나 전공을 고려해서 4가지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을 가게 되지만, 대학 자체도 서열이 정해져 있지 않고, 어떤 대학이든 고른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대부분 각자의 지역 내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지역의 다양한 산업체나 연구소 등으로 들어가서 다시 그 지역의 경제에 이바지하게 되는 구조로, 지역이 인재를 키우고, 다시 그 인재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선순환의 구조를 보여준다.  

‘대학’의 서열이 추후 인생의 서열을 결정짓는 우리의 현실과 굉장히 다른 부분이다. 모두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연봉을 위해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며, 대학 서열화에 이어 직장과 연봉 서열화가 함께 따라가면서, 서울만 비대해지고 지역은 생존을 위한 경제기반 마저 흔들흔들거리는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다’라는 강준만 교수의 비평서까지 나왔을까…  

진짜, 전인교육을 하는 나라, 독일  

학교 도덕 시간이던가? 대한의 교육기관은 ‘전인교육’을 목표로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지덕체를 고루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는 그럴 듯한 목표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전인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저, 성적 줄서기를 위한 볼모들만 가득할 뿐이지.  

하지만 독일은 진정한 전인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성적이라는 잣대 하나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지도하고, 나와 내 가족 뿐 아니라 세상 전체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곳으로 알게 하는 일상 속의 봉사나 기부 교육 등이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인교육에 대해 독일 사회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생을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은퇴한 스테판 선생님의 이야기나, 저자가 아들을 통해 인터뷰 했던 학교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1등으로 수영하는 것보다 함께 수영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 스테판 선생님 인터뷰 중  

“...주입식 학습법은 정신적인 발달을 무시하고 단순 암기와 지식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는 사고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도 공부를 잘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이 쉽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기적인 사람이나 명예욕만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 또한 높은 것이지요.
…(중략)... 히틀러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참된 인성을 갖춘 사람이 성공했을 때만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아돌프 교장 선생님 인터뷰 중

이 두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독일 교육자를 포함한 독일인들 전체적인 교육과 인생에 대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가 바로 이 두 이야기에 압축되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삶을 위해서 창조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지식의 전달은 주입식 교육이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고의 깊이가 없는 교육의 결과로 인성이 부족한 사람이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전체 사회가 오히려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독일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회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 때문에 불행하다고 자살하는, 상위 1%를 위해 나머지 99%가 들러리가 되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아이들’이 느끼는 교실에서의 행복감은 천지차이일 게다.  

아하, 그래서 ‘꼴지도 행복한 교실’이구나… 싶었다.  

교육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살기 좋다고 이야기되어지는 유럽의 나라들, 핀란드나, 스웨덴, 그리고 이 독후감의 주인공인 독일 같은 나라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도 이 부분에 있는 것 같다. 각자의 개성에 바탕을 둔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고, 혼자 둬도 잘 할 수 있는 우수한 아이들보다 조금 떨어지고 부족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보살핌과 관심을 줌으로써 다 함께 건강하게 커가고 더불어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데 주력을 한다는 부분 말이다.  

그렇다고 모두 독일로 갈 순 없잖아. 우리가 여기서 해보면 어때?  

모두가 행복한 교육, 우리라고 못할 건 없다. 우리도 말로는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학교에서 아무리 전인교육을 하고 싶어도, 사회가 그걸 허락치 않는 게 문제다. 부모가 성적 위주 교육을 시키지 않는대도, 나중에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기 어렵게 되어있는 것이 문제다. 교육도 사회와 문화 전체의 산물인 만큼, 그 제도 하나만 덜렁 떨어져서 바꾼다고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사회적으로 학력 우선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전문 직업인이 존중 받고, 연봉이나 처우에 있어서도 대학 졸업자라 해서 더 대우받는 구조가 아닌 독일이기에,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는 교육이 가능한 것이고, 우린 성적 하나로 줄 세워서 좋은 일자리,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사회적 구조를 지녔기에, 학교도 그 틀에 맞춰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 게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꽉 맞물려있는 우리의 전체적인 사회 구조가, 사실 우리의 교육 문제가 계속 해결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한 사람의 장관이나 대통령, 또는 정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렇게 쉽게 바뀔 제도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득세하도록 놔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나 할 것 없이 교육 선진국으로 짐싸갖고 이사 갈 건가? 그럼 문제가 해결될까?  

저자의 시선도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소개하는 ‘독일의 교육 제도’를 우리가 똑같이 따라 하면 문제가 짜잔~ 하고 해결될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독일은 잘 낫고, 우리는 못났다고 탓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자는 식의 구태의연한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 사람의 부모로서, 10년 넘게 적응하고서야, 한국 엄마로서의 조바심을 벗고, 교육과 양육에 대한 태도를 바꿔가고 있다는 것. 본인도 만약 한국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오히려 1등 치맛바람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 여전히 어느 정도는 대학교육을 받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고, 자녀가 직업학교로 진로를 결정하자 자녀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독일 학부모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자신 역시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한국인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부모라면 누구나 겪을 그 고민의 방향을 바꿔보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내 해석이 지나친걸까?  

아마도, 독일의 교육제도에 아이들을 맡기면서도, 첫 아이에 대해서는 조바심을 내고 한국식으로 걱정하고 대비하려 했던 저자가, 둘째 아이는 다른 독일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그러듯이, 스스로 하도록 지켜봐 주고,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변화는 가능하다’는 증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놓으며,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겠다는 부모로서의 나의 다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아이의 미래를 내가 미리 결정짓고 따라오길 바라는 독선도 조심하고, 대학이나 진로에 대한 욕심도 내려놔야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취직하고 남보다 더 많이 돈 버는 사람을 만드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내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강해져야지. 그런 다짐도 해본다.  

갈 길도 멀고, 결국 나 혼자만 손해보고 끝나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내 생각이 잘못 된 거라, 내 아이들이 나중에 불행해져서 나를 탓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순간순간 치고 올라온다. 지금 현실을 비춰보면, 이 땅에 독일이나 핀란드 같은 교실을 일구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좌파가 집권하는 날이 오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하는 짐작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같은 고민이 있을 거고, 그런 고민에서 출발하는 부모들이 늘어난다면 이 땅의 교육 현실도, 더 나아가 사회 모습도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주변이 어두울 수록 여리지만 밝게 빛날 수 있는게 희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흔들리지 말자! 독일만큼 행복한 교실, 아이들이 아이답게 행복한 사회, 이 땅에서 되지 말란 법 없으니까 말이다.



* 박성숙님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 출간과 더불어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단에 참여해서 적은 독후감이다. 개인 블로그의 원문은 여기 : http://blog.naver.com/indisha/10083960618 

워낙 블로그를 통해 읽고 소통하면서 교육과 부모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해왔던 내용들이라 쉽게 적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쓰자고 맘 먹고 덤비자니 어렵게만 느껴지더라...

주말 동안 아이들 때문에 컴터 앞에 앉지도 못해서 작성 할 수 없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내 독후감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했나 모르겠다...

아직도 이 책과 블로그를 통해 얻은 많은 생각들의 절반도 채 정리가 되지 못했지만,  

블로그는 진행형이니까, 그리고 부모로서의 내 인생도 진행형이니까,  

계속 고민해 가면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평을 적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데 감사하고,  
무엇보다, 무터킨더님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우리 교육에 대한 부모로서의 걱정과 고민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부모들에게 공유되어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4월 말 경으로 계획되어 있다는 무터킨더님과 김규항님의 강연회도 꼭 참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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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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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니까, 그의 이라부 선생이니까... 고민 잊고 한참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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