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 초 단위의 동물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2
김병운 외 지음, 민가경 해설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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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젊은 작가 단편집이다. 각 나름의 이야기는 부족한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재밌기도 한 작품도 존재했다.

  1. 오프닝 나이트

나를 보는 시선. 그 시선 이후 나에게 다가오는 낯선 남자. 그리고 관심. 대화들. 그 짧은 대화들로 이루어진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서 들은 그 사람의 평가. 둘은 일치하지 않는다. 누가 우선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내 평가가 영원히 남을 듯 하다. 앞으로 어떤 관계로 만날지 못 만날지 모겠지만 이후 우연으로 다시 만나 그 시간을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궁금증은 굳이 동성애자를 이 소설에 꺼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여기 이 남자들은 알고 있을까, 그날 아침이 그림이 됐다는 걸. 그날의 자신이, 그때의 뒷모습이 결국 이토록 진지하고 고상한 구경거리가 됐으며 절찬리에 판매 중이기까지 하다는 걸 짐작이나 할까. 11


어떤 소설이 사실적인 건 그게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겹겹의 허구를 정교하게 쌓아 올렸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을, 제아무리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여도 나라는 사람과 나 같은 인물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걸 간과하는 사람들을 그저 비웃으면 되는 일일까 17


네가 쓰는 것이 퀴어로서의 진정성과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최근의 담론 안에서 충분히 주목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게 절실해진 다음부터 네가 선택한 자구책인데, 이런 시도들이 너의 문학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곁의 우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18


나는 갈라져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의 틈새로 서운함이 밀려드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마주쳤을 뿐만 아니라 같은 그림을 선택하기까지 했다는 우연을, 이 순간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는 내 의지를, 남자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단번에 진압하려는 걸 느낀다. 35



2. 초단위의 동물

매일 지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매일 같은 일을 하며 하루를 반복하는 일상. 그 일상 속에 우린 나라는 존재가 없어져 그저 일이란 삶만이 존재한다. 그건 과연 나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 반복 된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는 달팽이가 된다. 달팽이로서 하루를 살아간다. 그저 꿈틀거리며 기어간다. 그 달팽이는 매일 열심히 움직이며 일을 한다. 일과 꿈틀거림 비교 할 수 없을 것같지만 둘 다 나름 비슷한 것이다. 무엇이 크게 의미가 있고 의미가 없는지 알 수없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기준은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보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동물으로서 꿈틀거릴뿐이다. 의미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살아갈 뿐일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저 내가 내리면 되지 않을지.

조이와 달리, 루나는 매일 딱 1분씩 늦었다. 조이와 루나 중에 누가 더 문제일까,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가장 문제일 것이다. 나처럼 애매하게 자주 늦으면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덜 늦기 위해 택시를 타는 내 마음을 회사가 알까. 43


반복되었다. 반복되고 반복되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벌써 아홉 시라니, 벌써 9월이라니, 그러면 안 되는데. 벌써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리 없겠지만, 시간이 잘못된 것 같았다. 시간이 미친 것 같았다. 이러다가 곧 추석이 되고 연말이 되고 새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한 살, 한 살. 언제부턴가 내 나이를 세지 않게 되었다. 가끔 나조차도, 내가 지금 몇 살인지 헷갈렸다 55



3. 끝말잇기

어떤 의도로 썻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와 끝말잇기 놀이를 한다. 끝없이. 그리고 그 목소리는 그들만의 소리이고 그들만이 들리는 목소리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라질 우리의 환상들 어쩌면 생각들. 그렇게 우리는 커가고 다른 것에 물들어져 깨끗함이 없어져 간다.



4.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재미있는 건 별로 절실하지 않은 듯 행동하니 오히려 상대방이 끌리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124


부치는 레이즈언을 뜻하는 단어이다. 레즈비언이 섹스 로봇을 사용한다는 설정. 재미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은 아직 나에게는 먼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5. 핀홀

우리가 갖고 있는 비밀들. 낯 선 세계에 들어선 순간 만나는 다양한 비밀들. 모르고 지나면 더없이 모두들 행복해 보이고 나만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낯 선 세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다 같이 비슷한 비밀들과 비슷한 고민들을 갖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우린 그렇게 다들 비슷한 존재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것일까?


바늘로 두 조각의 천을 잇대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개의 바늘구멍이 필요하다고 외할머니는 말했다. 이쪽에 하나, 다른 쪽에 하나. 각각 구멍이 있어야 무엇으로든 이을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살아 있다면 보라는 묻고 싶었다. 그럼 내 앞에 나타난 이 구멍들은 무엇으로 이어야 해, 할머니?

무엇으로 단단하게 이을 수 있어?177



6. 달리는 무릎

달리기를 하다 무릎을 다치고 수술을 하게 된다. 그 이후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계인의 목소리이다. 그 외계인은 부탁을 한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추진력을 얻기위해 달려달라고, 그와 대화를 하며 일상을 보낸 후 외계인은 인사도 없이 떠난다. 이제 다시 혼자 남겨진 외로운 나.

사실 중요한건 외계인이 아닌거 같다. 그저 내가 다친 무릎이 아직 잘 작동한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난 달릴수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듯보인다.

내 두 다리가 있으니 난 오늘 맥주와 오징어라도 먹을 돈을 벌 수 있다.



7. 무심과 영원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믿는다. 아니. 어쩌면 원인은 없는 듯도 하다. 우리의 모든 일에 그 원인이란게 존재한다면 그 원인을 전부를 이해해야한다. 그런데 그럴수 없다. 그러니 우린 결과만 받아들이며 그것을 생각하는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게 나을 듯도 하다. 무심함이 세상의 기본 이론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고, 대답과 대답 사이에서 서로의 침묵을 느끼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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