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섹스 - 일하는 뇌와 사랑하는 뇌의 남녀 차이
앤 무어.데이비드 제슬 지음, 곽윤정 옮김 / 북스넛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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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오래된 것을 고르고 과학서는 최신의 것을 고르라'는 말이 있다. 첨단의 연구세계로 들어가면 어제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으로, 혹은 그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가득찬 뇌의 영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를 정서, 학습, 성정체성, 성공, 이성, 결혼 등의 관점에서 풀어나간 <브레인 섹스>는 92년에 출간된 책이다. 다시 말해 20년 전의 연구결과만이 이 책이 주장하는 중심 근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뇌과학서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나,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남녀의 차이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떠오르는 남녀심리분석 열풍에 힘입어 번역되어 출간될 수 있었던 게 아닌지 싶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저자가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될 연구결과만을 끌어들이지 않았는지, 신뢰할만한 연구인지, 직접 실험한 것인지, 실험의 내용을 편협하게 해석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생각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브레인 섹스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러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책의 개요를 살펴보면 마치 뇌의 차이나, 남녀호르몬 분포에 따른 차이 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온통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마치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책처럼 보이지만 막상 열어보면 고리타분한 내용들로 뒤덮여 있다.(20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내용 자체는 심플하고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거슬리는 건 모든 것을 뇌와 호르몬으로 설명하려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이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성취욕이 강하다, 그러니 남자가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 여성에게는 모성본능이 있고 집안일에 재능이 있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조금이나마 집안일에 신경을 써라, 는 것이 성공을 다루는 이 챕터의 결론이다. <브레인 섹스>에서는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억압, 사회적 차별들을 축소하고 애써 없는 것 취급하려는 태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남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여성의 희생 따위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성공에 유리한 뇌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위의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남자가 성공에 유리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혹은 성공지향적인) '맞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여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뇌과학은 있으나 사회과학은 없다. 보이는 것은 있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브레인 섹스>는 뇌에 의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의 성을 투명화시켜 다른 쪽의 헤게모니를 굳건히 하는 데 일조한다.

남녀의 뇌 차이를 이야기하는 다른 책으로 레너드 삭스의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추천한다. 05년에 출간된 책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뇌에 따른 차이를 설득력있게 다룬다.가정의학과 전문의의자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직접 대하고 치료하면서 체험한 내용과 최신의 연구결과를 다루며 성별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있다.(<브레인 섹스>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내용을 여러군데 발견할 수 있다.) 아래문단은 <브레인 섹스>가 과학서적으로서 갖는 의미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 타고난 차이점들이 있음을 확신하면서도 그 차이를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책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집필된 것이 아니라 저자들의 개인적인 신념이나 정치적인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동발달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성차를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수하는 구실로 이용한다.'(<남자아이 여자아이>,레너드 삭스, 18p)


말그대로 20년 전이라면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에는 단순히 트렌드의 기류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술은 통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시대에 뒤처진 책을 읽고 있을만큼 한가하지 않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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