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무법자 -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자극적인 제목 때문이었다.

‘MTF(male to female) 트렌스젠더이자 레즈비언(!!)인 저자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감탄을 자아냈던 <젠더 무법자>라는 제목은 독자를 한 순간에 사로잡을 만큼 탁월했던 것이었다.

 

책은 여러 챕터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작가가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단 하나다.

“여자 혹은 남자로 양분화하는 젠더체제를 파괴시키자”

 

극단적인 이분화는 양단을 대립시킨다. 대립체제 하에서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억압하는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남녀로 이분화된 젠더체제 자체를 무너뜨려 다양한 성별을 만듬으로서 이성애자 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 주류사회의 억압과 지배에서 자유로워지자고 주장한다.

‘다양한 성별’은 정말 흥미로운 단어인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젠더를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을 분리시켜 적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물학 적으로 남녀를 분리시키는 기준은 아주 확고하다. 이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젠더를 정신적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면 어떨까?

남성의 정신, 여성의 정신 이 두 가지를 완벽히 분리시킬 기준이랄게 있는가? 남성다움, 여성다움을 설명해보라면 할 수 있겠는가? (난 솔직히 자신이 없다.)

생물학적 성별도 돈만 주면 바꿀 수 있는 마당에 정신을 남성, 여성으로 분리시켜 가두려는 행위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별에서 자유로워 짐으로서 우리는 게이, 레즈비언, 크로스드레서, 트렌스젠더 그 외 다수의 소위 ‘성적 소수자’를 아우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성 역할을 선호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 (예컨대 집안일을 잘 못하는 여자나 상명하복 체계의 군대생활이 맞지 않는 남자가 있겠다.)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별이 (당연하게도) 성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겐 이 주장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 사이엔 눈에 띌 만한 차이가 없다고 한다.

결국 정신적 영역의 여성성, 남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문화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신적 영역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없는 짓이다. 성별에 따라 성향, 성격이 정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신영역은 성별이 아닌 교육의 정도, 자라온 환경(때때로 성격도 유전이 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부모와 같이 살면서 비슷한 성격이 형성된 것이지, 태생적으로 부모의 성격을 타고 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에 달려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젠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성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고 늘 주장하는 나 조차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말이다.

 

덧붙여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특이한 단락 구성이다.

중간 중간에 문단 정렬이 달라지는데, 양쪽 정렬은 이 책의 본문이며, 오른쪽 정렬은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용문, 왼쪽 정렬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 감정을 담았다.

독특한 문단 변화가 글을 지루하지 않게 끔 해주는 것 같다.

 

다만, 이 책에 한 가지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번역’이다. 번역이 매우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어서 글을 읽는다기 보단 해석한다는 느낌이 든다.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때려칠까 생각했지만, 내용이 흥미로운 덕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p.28 3문단 4번째 줄 中
문제는 우리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 되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또 무엇인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 주려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p.31 2문단 1째 줄 中
어른은 질문하지 않는다. "당신은 무엇인가요?"하고 질문하기를 두려워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요?"하고 묻는다. 누군가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 말이다.

p.53 2문단
어떤 사람들은 외모, 성적 지향, 소통 방법 등이 성 역할에 포함된다고 하겠지만, 나는 직업, 경제적 역할, 허드렛일 여부, 취미 등으로 가늠하는 편이 성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성 역할은 문화가 어떤 하나의 성별에만 특별히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지위와 행동이다.



생물학적 성별은 내가 해당 성별의 성기를 가지고 있다만 증명할 뿐, 나의 성격, 성향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 까지 단정 지을 순 없다.

난 어느 쪽이든 한쪽이 되려고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정말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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