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나 고민이다. 읽고 싶은 책에 대한 나의 욕망은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라는 금전적인 문제와 끝까지 싸우게 된다. 결국 ‘어디 한번 읽어 볼까?’라는 마음으로 만나는 책은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고, 소장하고 싶은 책만 나만의 ‘책장’에 꽂힌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소장하고 싶은 책은 반드시 다시 구입하는 편이다. 물론 여기서 나 역시 <지식인의 서재>에 나온 열다섯 지식인들처럼 당당하게 ‘서재’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다. 나에게는 아직 서재라 할 만한 공간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 방 한 쪽의 책장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아무튼 소박한 책장을 가진 나에게나 입이 딱 벌어지는 서재를 가진 그들이나 책을 고르는 데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물론 독서량만 따져도 나와 확연히 차이가 나겠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것과 상관없이 나의 책장이나 그들의 서재에는 모두 철저하게 서로의 ‘기호’에 맞춘 책들만 꽂힐 테니까.
한 사람이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은 그가 하고 있는 생각과 그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이 때로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서재는 어떠한가. 서재는 온통 그만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다. 그래서 서재를 공개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의 서재를 엿보는 일이라면 책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일임에 틀림없다.
내로라하는 열다섯 명의 지식인들, 그들의 서재를 공개한다고 한다. 이 한 줄의 설명으로 이 책은 더 보고 재고 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책을 주문하고 내 손에 전해지기까지 그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느껴졌다. 이 책만큼은 조금 더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보통 책을 주문할 때에는 여러 권을 한꺼번에 모아서 주문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이 책 하나만 달랑 주문했다. 그만큼 <지식인의 서재> 책에 푹 빠져서 정신이 없긴 없었나보다.
아무튼 그렇게 내 손에 전해진 이 책을 받아들고 표지만 한참을 또 바라보았다. 아, 그냥 좋다. 무슨 다른 말을 더 하겠는가. 앞으로 표지 너머로 펼쳐질 열다섯 ‘책쟁이’들의 ‘책이야기’에 읽기도 전에 설렌다. 사실 이까짓 한 권 넉넉잡아 세 시간이면 다 읽어 치울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천천히 조금씩 아껴서 읽고 싶다. 빨리 책을 만나고 싶던 조급한 내 마음이 이렇게 느긋해질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아주 아주 천천히, 첫 번째 에피소드 조국의 서재를 읽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서재는 그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내가 기대한 것을 이토록 완벽히 보여주다니.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 |
그는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것을 좋아하는 법학자다. 법학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고, 시민운동과 인권운동을 통해 소통과 참여를 시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도회적인 외무 안에 된장 냄새 나는 푸근한 정서가 있고, 차가운 이성 안에 따뜻한 감성이 함께 녹아있는 그는 겉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의외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그의 서재도 그를 닮았다. 늘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불쑥불쑥 적도의 태양 같은 열정이 튀어나온다. (11p 법학자 조국의 서재 中)
법에 대한 냉정한 이성과 감성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조화를 이루는 곳, 조국에게 서재는 그런 곳이다. 감성을 다스리고 자신만의 사상을 구축하는 곳이자 학문을 연구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시키는 공간이다. 생각들을 녹이고 재정비하고 성숙시키는 제련소인 셈이다. 서재는 그만의 밀실이요, 책과 교감하는 성城이다. (14p 법학자 조국의 서재 中)
|
|
| |
|
 |
앞으로도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천천히, 조금씩 야금야금 읽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속내를 드러내 보여준 열다섯 지식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지식인의 서재> 이 책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우선 열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열다섯 권의 책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전부도 아니다. 여기에 그들이 소개하는 책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백 권 이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간만에 보물을 만난 기분이다. 앞으로 펼쳐질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더 걸릴지 나도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동안 그 끝까지 설레고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