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비의 남자 펄프픽션 2
이경자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대놓고 통속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속에서 ‘통속’이 아닌 ‘진실’을 봤다. 통속의 외피를 쓰고 켜켜히 감춰둔 진실의 실타래를 끊임없이 풀어내고 있는 이 「귀비의 여자」.
내가 「귀비의 여자」를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귀비에게 남자는 제가 가진 상처와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가면 쓴 위선자다. 강간범에 다름없거나(연옥의 삼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 추행을 일삼거나(도덕선생, 국어선생),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이라는 비뚤어진 의식의 인텔리(송민하)이며, 귀비의 남편 최동철 또한 왜곡된 성의식으로 인해 자기 번민에 허덕이다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하나같이 자기 기만자이다.

하지만 이런 위선 앞에 귀비는 한없이 너그럽다. 자애롭다. 무구한 자연을 닮았다.
귀비는 남대문 노숙자를 품어주었고 심지어 자신을 짓밟고 거쳐간 사내들을 위로했다. 귀비 앞에서 모든 남자는 가여운 생명일 뿐이다. 가여운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그 한 가지 순일함으로, 사랑만으로 귀비는 기만을 넘고 가식을 넘는다. 날 것과 맞닥뜨리게 한다.
구도섭이 끝내 자신의 삶이 절름발이에 불과했음을 깨닫듯, 백억대 자산가라는 외피를 벗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 건 귀비가 가진 생명의 힘인 것이다. 구도섭이 깨달음의 댓가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돈’을 귀비에게 선물하지만 귀비는 잊는다. 귀비는 순간을 즐기고 몰입하는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
소멸을 겁내지 않고 물같이 세월같이 쉼없이 인연을 엮어 나가는 귀비.
귀비는 곯아터진 삶을 숨긴채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을 연민한다.
위선과 가식을 훌훌 벗어던지고 원초적 자연성으로 위선이라는 가시밭길을 거뜬히 넘는다.
귀비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여자다.

하지만 귀비의 원초성에만 빠져들고 말 일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날 선 외침은 잦아들은 듯 보이지만 이경자님이 추구하는 주제의식은 여전히 한켠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바로 ‘피의 역사’라는 상징으로 말이다.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아들에 아들로 이어지는 피의 미래를 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귀비의 시어머니를 통해 여전히 환기시키고 있다. 이 점 중요하다.
작가의 집요한 문제의식을 확인하는 일이야 말로 왜 내가 이경자님의 작품을 계속 읽어야만 하느냐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점 달라졌다. 위선과 기만에 맞서는 태도다. 한없이 품어안고, 끌어안고, 사랑하고, 몰입하고...넉넉한 품으로 모든 걸 그러안고 가보자는 것일까?

「귀비의 남자」, 두께는 얄팍하지만 곱씹을수록 얄팍한 인생살이를 넘어서는 넉넉한 깊이가 새록새록 엿보이는 수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