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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오른손에 총이, 라이플총처럼 길고 검은 총이 쥐여 있다. 다른 누군가가 서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돌아서고 있다.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녀는 링컨을 꽉 붙들고 안아 올린다. 그녀는 달린다. 평범한 어느 늦은 한 오후, 조앤은 네 살배기 아들 링컨과 동물원을 방문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을 좋아하고, 배트맨과 슈퍼맨, 아이언맨 같은 슈퍼 히어로 서사시를 만들어내는 링컨을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조앤. 동물원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30분되기 전, 다음을 기약하고 동물원 입구로 향하던 그는 섬뜩하리만치 고요함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발견한다. 지체하지 않고 뛴다. 달아난다. 살기 위해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폐장 시간을 노려 그들이 ‘파티’라고 부르는 행동을 시작하는 세 남자. 죄책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분노도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통해 느껴지는 희열 그리고 쾌감만 남아 있을 뿐.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고, 아무 이유 없이 총을 발사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면서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숨어 있는 사냥감들을 찾아서. 그렇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다.
엄마는 총알도 막을 수 있어. 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저 밖에 있는 것보다 강하고 빠르고 똑똑해. 사실은 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링컨은 이미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그녀 자신도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마치 게임인 것처럼, 동물원이라는 세계 안에서 마치 자신들이 왕이라도 된 것처럼, 동물이든 사람이든 눈에 띄는 것이면 무작정 총을 쏘는 알 수 없는 존재. 조앤과 아이가 낸 옅은 숨소리가, 움직임이, 휴대폰 불빛이, 찰나의 선택이 그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숨 막히는 동물원. 조앤과 링컨, 그리고 동물원 안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아이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계속 울고, 칭얼거리면 그들이 두 사람을 찾아내기 쉬울 게 뻔하니까.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자신만 위험해 처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앤은 아들 링컨에게 이 모든 것이 악당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가만히, 조용히 숨어 있어야지만 이기는 싸움이라고 말한다. 나는 살아남지 못해도 너는 살아야 하니까.
도덕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관념들은, 기본적인 도리들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그 날의 밤, 그 날의 동물원. 누군가는 도덕과 윤리적인 관념을 버렸지만, 조앤은 모성애로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아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조앤. 그는 심지어 타인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지킨다. 엄마의 존재는, 엄마의 힘은 여기서 발현된다.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고.
한 번 잡자마자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어느새 나는 조앤 그리고 링컨과 함께 밤의 동물원 속에 들어가 있었다. 악당들과의 숨 막히는 ‘숨바꼭질’은 새벽이 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모성애를, 그리고 엄마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밤의 동물원>. ‘최고의 범죄 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몰입해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끝까지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더운 여름, 섬뜩한 범죄 소설을 읽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번 여름에는 <밤의 동물원>, 너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