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츠바이크 선집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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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을 일으킨 원인이 된 우유부단함의 끝판왕, 루이 16세. 사치로 국고를 낭비하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를 말했다는 진정 ’깨끗한 뇌‘의 소유자, 마리 앙투아네트. 이렇게만 생각했다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읽어보기를 권한다. 진실과 정의가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산다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선동을 목적으로 한 인물이 그려질 때, 여론과 그 추종자들로부터 정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왜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역사는 어디까지나 승자의 편이기에 패자의 기록은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츠바이크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진실과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 진짜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떠한 존재였을까?


순진무구함. 나이가 어림. 생각이 짧음.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음.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린 시절은 말괄량이 그 자체였다. 열여섯 살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소녀다움을 잃지 않았다 평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남들이 뛰어놀 시절에 프랑스 황태자비가 되었다. 책 읽기보다는 놀기 좋아하고 사람과 있기를 즐겼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성이나 교양을 겸비할 틈 없이 높은 자리에 올랐고, 그를 향한 백성의 사랑과 귀족의 찬사는 평범한 한 소녀를 들뜨게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위대함만을 느꼈을 뿐 그것에 따르는 책임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활짝 핀 얼굴로 거리낌 없이 왕좌에 올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 소녀는 왕좌에 앉으며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되자 사치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어리석은 청춘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온 세상 사람들도 모두 즐겁고 근심이 없으려니 여겼다. 유리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20년 동안이나 진정한 민중과 진정한 파리를 그저 지나치기만 한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당연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고.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왕실 태생에 소위 말하는 ‘꽃길’만 걸어온 사람이라 평민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평생을 온실 안 화초로 살았는데, 온실 밖의 삶을 궁금해할 틈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쾌락과 향락에 찌들어 있었다. 그의 무지와 무능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렇게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키며 온 세상에 밉보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목숨과 왕권, 그리고 자녀들을 지켜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고서야 그녀는 스스로에게서 저항의 힘을 찾았다. 그리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지성과 행동력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편지에 써 내려갔다. “인간은 불행 속에서만 자신이 누군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위기에 빠져 왕관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위엄을 보인다. 루이 16세는 여전히 우유부단했다. 그는 왕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탈출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권위를 빼앗아 간 자들에게 대항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은 내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을 살았으며 백성의 모본이 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었으나,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선으로 소설 초반을 의도적으로 이끈다. 고작 열여섯 밖에 되지 않은 딸을 타국에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불안한 시선과 심정. 독자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엄마 마음’ 가지고 바라보게 만들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무지에 혀를 차는 것이 아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도록 했다.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에, 결말을 알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어쩌면 우린 너무나도 쉽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평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토록 복잡한 삶을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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