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고대 제국에서 온라인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산타페연구소 속임수연구회 지음, 브룩 해링턴 엮음, 고기탁 옮김 / 황소걸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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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 헌정도서?'  

이 책을 본 순간 왜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나 살기도 바쁜데 정치인들 행태에 울그락불그락 하는 사람도 아니고, 괜히 참견했다가 귀찮아지는 일에 신경 쓰고 싶은 마음도 없는,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피곤한, 기껏 술 먹다가 안주거리로 누구누구 씹어보는 소시민 중 한 사람인데... 왜 이 책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우리 가카 헌정 도서네' 하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가카' 라는 낱말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상되었을까? 또 '가카' 라는 낱말에 왜 실실 웃음이 나왔을까?

나 같은 사람도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걸 보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정치에 대해 특히 특정 누구에 대해 어지간히 떠들었나 보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카' 와 '속임수' 가 동일시 된 걸 보면, 이건 뭐 서글픔을 넘어... 좀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용이 '가카 헌정도서' 진짜 맞는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제목에서 조금 다른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이 책은 '거짓' 이 아닌 '속임수'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속임수는 거짓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니까.

그리고 이 책은 속임수가 나쁜 것이라는 논조가 아니다. 삶을 위해서 속임수는 필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도 있다는 논조다.

이런 논조이다 보니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이렇게 따져보니까 결국 진짜 가카 헌정도서가 맞다는ㅎㅎ.

가령 이런 내용은 충분히 훌륭한 변론거리를 제공한다.

 

 

102p - 속임수는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호랑이는 높이 자란 마른 풀이 있는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도록 누르스름한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털가죽으로 먹잇감을 기만한다. 하지만 그 호랑이가 아침에 벽장을 둘러보고 민무늬와 점박이 무늬 옷 대신 줄무늬 옷을 고른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계획되고 진행된 진화가 이같은 배색과 무늬를 선택했지, 호랑이의 의도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뜻이다.

 

134p - 옷과 화장, 몸가짐을 통해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는 행동은 인간관계의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며, 흔히 보고되는 속임수의 유형이다....온라인상에 개인 프로필을 적을 때 여자들은 나이와 몸무게를 줄이고 남자들은 키를 늘린다. 수많은 잡지와 책들이 그런 속임수를 적절한 연예 전략이라고 부추긴다.

 

 

즉, 속임수는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화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또한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죄책감없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니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든든한 변호사 같은 책인가. 살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필요하다는데야...

그리고 속임수를 부리는 사람이나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나 그 능력은 후천적으로 훈련되어지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향도 있음을 알려준다. 잘 속고 잘 속이는 사람 모두 원래부터 그렇게 타고 난 걸 어쩌란 말인가.

 

 

131p - 동시에 여러 여자와 결혼한 사기꾼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많은 여자를 매혹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드러진 개인적 특성이 없다. 이를테면 좀처럼 부자도 아니고,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지적이거나 매력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 예컨대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싶어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그들은 '봉' 같은 사람을 속이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에 담긴 사소한 모순 따위는 걱정하지 않으며, 여자들의 특정한 취약점에 따라 이야기를 바꾸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대다수 사기꾼들은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예컨대 돈후안 같은 남자에게 속아 넘어간 여자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경고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고를 믿고 싶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이 말은 우리들과 우리가 아는 누구와 많이 닮지 않았나? 경제를 살린다고 약속하며 나섰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걸 믿고 싶었기 때문에 믿은 것 아니었나? 그러니 잘 속는 능력을 타고난 자신을 탓해야지 누구 탓할 것 없지 않나?

하지만 다음 말은 이런 상황이 꼭 우리 잘못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105p - 행동에서 거짓말을 읽어내고자 하는 연구는 거짓말을 드러내는 두 군의 행동 단서가 있음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말투에서 나타나고, 후자는 얼굴과 목소리 톤에서 나타난다. 더불어 신체는 그런 사고와 감정적인 단서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149p - 사람들은 대부분 그다지 뛰어난 거짓말 탐지기가 아니다.... 대다수 경찰 집단은 대학생보다 별반 나을 게 없었지만, 법 관련 일부 전무직 종사사들은 탁월한 정확성을 보였다. 이들 중에는 첩보 기관의 비밀 요원이나 심문 기술이 훌륭한 연방 법률 집행인, 범죄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중재인, 분규 조정자, 연방 판사 등...

 

 

즉 상대를 잘 관찰하면 속임수를 알아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특별히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속임수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속았다고 너무 억울해할 필요없다. 속이려고 하는 사람이 마음먹고 덤비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내가 무심코 지낸 몇 년 사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

그건 바로 '괴담' 이다. 요즘 툭하면 높은 분들이 나와 괴담을 엄단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받은 걸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괴담을 엄중 단속하겠다는 높은 분들의 경고는 역설적이게도 현재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 아닐까?

 

 

324p - 루머가 (특히 중대한 사회적 쟁점을 설명하는 주장이) 만연한 사회는 제도의 장애를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제도의 일방적인 측면만 강조되거나, 제도가 정확하거나 공정한 정보 혹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권위적인 국가는 루머의 빈도와 사회체제의 실패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 경우 대중은 정부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정보를 거부한다. 그리고 기만적인 정보 제공자를 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 경로가 정보 흐름의 대안으로 자리 잡는다. 권위적인 정부는 대중이 대안으로 선택한 정보를 통제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지만, 대중의 입을 완전히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 말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지나 않은지...

결국 요즘처럼 괴담이라고 하는 소문이 많아지고, 정부가 괴담을 단속하겠다고 나서는 것들은 정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셈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속임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다소 학술적인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존에 수없이 나온 '거짓말'에 대한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속임수는 나쁜 것' 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속임수라는게 도대체 무언가?' 라는 관점에서 많고 깊은 지식을 제공해준다.

물론 앞에서 말한대로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변호 역할도 할 것 같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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