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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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야근을 해도 아침에 일어나야만 하고, 먹고 싶지 않아도 12시만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짬을 내어 누군가를 만나야만 하며,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과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회의를 해야 한다. 지금 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 일을 해야 하며,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은 ‘그‘ 일을 해야 한다. 채워지는 것과 동시에 비어버리는월급 통장에 약간의 기대를 해야 하고, 또 곧바로 실망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술을 앞에 두고도 누군가의 지겨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 하고, 노래방에 끌려가서 부르기 싫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것 - P72

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다른 일상을 꿈꾼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카페가 일상이 되고, 밤새워 쓰는 글이, 퐁피두 센터가, 세비야의 햇살이, 라인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고흐의그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자고, 모든 하루가 내 손에 고스란히 달려 있으며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꾼다. 파리가 일상이 되길꿈꾼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지금, 이곳에, 있다.
그러니 나는 잠시 짬을 내어 마시는 커피에 한숨을 돌리고, 학원에가는 길에서 새벽이슬에 젖은 나무들에 감사하고, 회사 난간에 서서저녁노을에 먹먹해진 가슴을 느껴야 한다.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가좋다고 말해줄 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쓴 글이 아니다 싶을 땐 다시 쓸 열정을 가져야만 한다. 바람의 서늘함에 옷깃을 여미며 가을을 느껴야 하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지긋지긋하지 - P73

만 여름을 만끽해야만 한다. 나란히 앉아서 그 사람과 마시는 맥주에 행복을 느끼고, 그 사람의 눈빛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 다시 일상을 꾸려 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無化)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것이 스물여덟 청춘, 내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P74

조바심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펄펄끓는 욕망도 아니었고, 자신을 위한 담담한 바람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입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 와서 고민을 상담할 때에도, 나의 고민을 들어줄 때에도 할아버지는 내내 고요했고 담담했고 따뜻했다. - P188

자연스럽게 일기장은 서랍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는 썼구나.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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