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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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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감이 커졌다. 왜냐면 내 안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고, 용서하지 못한 오래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용서를 하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잊었던 것 같고 해결된 것 같은데 그 가해자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내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 더 심한 것은 자신이 가해자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행동하고 그 입에서는 그럴싸한 말들을 뛰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용서하라고요? 그래야 된다고 지면은 말한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용서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고 싶었다. 본서는 여러 장으로 나눠져 있지만 인생의 엄청난 고통을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극적으로 용서하고 자유함을 맛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문제를 해결할만한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의 고통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그 답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 장 파문 일으키기에서는 장폴 삼푸투와 아미시 사람들 그리고 이대봉 회장처럼 고난의 악순환을 끊고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용서가 반드시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들은 평생 동안 고통 속에 살아야 되는 일을 당했음에도 말로만 용서를 한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그 일을 위해서 희생했다. 고통스럽고 용서할 수 없지만.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만든 이대봉 회장을 통해 베트남까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고, 범인의 장례식장에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참석하고 그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미시 사람들은 모금운동을 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이런 모습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희생적인 용서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평화와 이전에 맛보지 못한 행복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이 사실을 그들이 알았기에 가능하였다. 그래서 용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희생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이 사는 곳은 늘 용서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 중에 가장 악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고, 우리 중에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다르게 보면 사람은 선과 악 중에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서 용서를 할 수도 있고, 용서가 필요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존재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바울도 자신의 연약함을 토로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끝난다면 죄악 된 인간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런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용서는 인간에게 반드시 있어야 되는 회복과 행복의 씨앗이 아닐까? 평화와 행복은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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