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 : 오치제를 바른 소녀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7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이지연 옮김, 구현성 / 알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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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네디 오코라포르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겠지만, 《블랙팬서》라는 이름은 다들 잘 알겁니다. 마블의 영화로서 십억 불이 넘는 흥행을 달성했었죠. 은네디 오코라포르는 이런 블랙팬서의 스핀오프인 슈리등을 비롯한 여러 코믹스의 작가로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아프로 퓨처리즘의 최전선에 선 작가 중 하나기도 합니다. 빈티는 이런 은네디의 작품답게 아프로 퓨처리즘의 테이스트가 강하게 묻어나옵니다. 

 작중의 쿠시족으로 은유되는 백인종과 사회의 주류들, 그리고 비주류로서 묘사되는 힘바족이 은유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요. 힘바족은 오랜 상처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전의 아프리카인들에게 백인들이 그러했듯, 쿠시족은 힘바족이 만드는 천문의를 필요로 하지만 힘바족을 홀대합니다. 힘바족은 쿠시인들에게 억압 당한 역사가 있으며, 아직도 그러합니다.


"이런 '흙목욕꾼' 족속들은 원래가 더러워."

-p30 쿠시족의 말


  이야기는 메인스트림에선 조금 먼듯한, "힘바족"의 소녀 빈티가 유수의 대학 "움자 대학"에 들어가는 것 부터 시작합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아프리카 부족민이 아이비리그에 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셈이죠. 현실의 아이비리그도 백인들이 절대 다수이지만, 움자 대학은 더 합니다. 빈티는 사실상 힘바족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들어가는 셈이였으니까요.

 이후 약간의 설명과 작중의 분위기를 보여준 뒤 빈티는 곧장 독자의 뒤통수를 쳐줍니다. 마치 "그냥 평범하게 대학에서 차별당하는 이야기나 될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죠. 작중에서 인간과 다른 외계인인 메두스는 충격적인 등장을 하지만, 이 메두스 조차도 이유없이 충격적인 등장을 하진 않았습니다. 메두스가 등장하는 이유조차도 기존의 '철저한 백인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는 소재였습니다. 

 빈티는 은유로서 많은 것들을 설명합니다. 고향의 흙을 개어만든 일종의 안료인 오치제는 아프리카 특유의 문화를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쿠시족과 적대하고 있는 메두스족들은 작중에서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고, 인간들을 적대했으나 빈티와는 대화가 통합니다. 오히려 빈티는 앞장서 이들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들 역시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다른 마이너리티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지금 내가 오치제를 전부 씻어내 버린다면 어떨까?
 우리 민족 중에서 움자 대학교에 오게 된 건 내가 최초인데, 여기 사람들이 차이를 알기나 할까?
-p118 빈티의 상념


 빈티로써 작가인 은네티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흑인 문화가 우월하다던가, 흑인을 주류에 편입해달라는 것도 아니였을겁니다. 아프로 퓨처리즘의 메시지는 기념비적인 명작 《스타트랙》에서부터 이어져 명확합니다.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복잡합니다.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그저 가지고 태어날 뿐인 피부색과 신체적인 특징으로서 그 사람을 분류한다면, 그건 결코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빈티는 말합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것 이상의 본질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은네디의 부드럽고 세세한 묘사로서 전달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다운 상상력이 글로서 생명을 얻어 다가옵니다. 영화 블랙팬서에서 보았던 아프리카계와 SF가 섞인 디자인은 꽤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집니다.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으나, 빈티의 시선에서 이를 해결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려냈습니다.

 빈티의 이야기는 오롯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피부색만 다를 뿐, 우리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메두스의 이야기는 열강들에게 문화재를 빼았겼던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움자 대학과 주류-비주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학벌과, 대학으로서 만들어지는 계급의 재생산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빈티는 마이너리티로서 겪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만나는 이야기는 쉽게 우리를 투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빈티처럼 '나무되기'를 하며, 우릴 적대하는 사람들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빈티입니다. 약하고, 고뇌하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성장하며 깨우칩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우리의 편견이라는 점을요.

 마치며, 도서출판 알마에서 빈티의 그래픽을 재구성한 것은 굉장히 훌륭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오프닝 그래픽은 심오하였으며, 작품을 다 읽고나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표지 역시 기존 영문판보다 훨씬 더 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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