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K가 사는 법 -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김택규 지음 / 더라인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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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번역가이지만 온전히 내 모국어로 호흡하고 내 모국어 안에서 자유롭다. p23

외국어 원문을 모국어로 전환하는 역자의 문장력에는 원문의 끈질긴 간섭을 적절히 뿌리칠 줄 아는 유연함과, 원문의 의미를 거의 자동적으로 안정된 모국어의 단어와 통사구조로 표현하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p107


영상번역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꾸준히 공부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번역은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 ‘번역이 글을 쓰는 일이라니?’ 글은 원작 작가가 전부 썼고 그걸 한국어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상번역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거다. 영어를 잘하고 해석을 잘한다고 해서 번역을 잘하는 건 아니다.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 하나를 쓰는 데도 탄탄한 문장력이 필요하다.


영어 원문에 집착하지 말고 원문의 의미를 한국어로 풀어 쓸 것.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마법처럼 증발해 버리는 게 문제지만. 번역가 K가 다시 일깨워 줬으니 제대로 새기자.



번역은 무수한 선택과 결단의 과정이다. p159


언젠가부터 누가 ‘영상번역은 어때?’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게 됐다. 

“규칙은 빡빡한데 정답은 없어.”


번역가 K의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번역은 단어 하나, 조사 하나까지 전부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come on’만 해도 ‘왜 이래’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테고 ‘못살아’라든지 ‘정말 이러기야?’처럼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번역할지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렸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어미와 조사, 더 나아가 말투를 설정하려면 머리가 핑 도는 기분마저 든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조차 한참을 고민하는 나에게는 시련도 그런 시련이 없다. 


극복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끊임없이 모국어를 공부해야 한다.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쓰자. 그러면 선택이 조금이나마 수월해지겠지.





자신을 모국어 안에서 자유로운 번역가라고 소개하더니 정말 한 글자도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냉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인생 선배를 만나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다.


물론 ‘중국어 출판번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번역가 K가 번역가를 꿈꾸게 된 계기부터 어떤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 왔고 또 어떻게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번역을 ‘어떻게 하라’고 알려 주는 번역 지침서는 아닐지 몰라도 번역가의 밥줄을 위협하고 있는 인공지능 앞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가져야 할지 고민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게다가 마지막 장에서는 번역가 K가 번역 요령도 슬쩍 공유해 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도움이 될 알짜배기 꿀팁만 들어 있으니 미래의 번역가 K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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