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가장 아플 때 와라 - 둘레길 로드에세이
이종성 지음 / 가디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지리산 등산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등산이 아니다.

약 280km에 달하는 장거리의 둘레길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한 시인의 가슴 절절한 산문집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생산된 책이므로 아름다운 시어들이 읽는 이들에게 안식을 준다. 그런 책이다.

또한 도보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등산객들에게도 시인의 마음을 가지라고 자연스럽게 속삭인다. 그런 책이다.

『지리산, 가장 아플때 와라』

둘레길 로드에세이

​ 1판 1쇄 발행 2014년 9월 22일

지은이: 이종성​

펴낸이: 신민식

펴낸곳: 가디언

지리산 둘레길 팔백리를 걸은 시인의 발걸음에 시가 흘러넘친다

하룻밤을 의탁하는 / 별들의 막영지 / 별들은 왜 찰나에 / 사라질지라도 / 수백만 년의 사유 끝에 / 제 몸 불사르며 / 광막한 어둠을 단숨에 / 가로질러 기어코 / 지리산에 오고야 마는가? <숙성치(宿星峙)> (5쪽)

​시인을 노래한다. 지리산을 오라고...그냥 오지말고 가장 아플때 오라고 한다. 가장 아플때 지리산을 찾으면 어머니가 품듯이 따스하게 찾아오는 아픈 이들을 보듬어 안고 치유해준다고 한다. 아직 그렇게 아프지 않은 이들은 그냥 왔다 가라고 한다.

지리산은 어머니다. 견디고 견디다 더는 못 견디게 아프고 힘들 때 찾아가는 어머니 산이다. 가서 털썩 무너져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왈칵 눈물을 쏟는 어머니의 품이다. 갈 데 없는 고달픈 민초들이 그랬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릴 때마다 우리의 역사도 그랬다. 그러한 연유는 더러 지리산에 오는 별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4쪽)

저자는 천왕봉을 포함한 장대한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둘레길 22구간을 즈려밝고 다니면서 어머니 산이 주는 풍요로움과 그 품속에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시로 노래한다. 그러기에 시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와 같은 메마른 가슴을 가진 이들에겐 생경한 느낌을 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천히 둘레길을 걷듯이 마음을 느리게 갖고 읽어나가다보면 아름다운 우리 국토와 강산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듯이 이 책도 그런 배움의 책이다.​ 시인의 마음은 돌과 바위, 나무와 물을 통해 지리산의 속마음을 더듬는다. 그러기에 아픈이들에게 오라고 하는 것이리라. 또한 후다닥 걸은 후에 느낀 것이 아니고 사계절을 두고 유유자적 걸었던 길을 마음으로 다시 걷는 사유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흔적을 보며 멀리는 조선시대부터 가까이는 현재 진행형인 질곡의 역사를 가만히 생각하게 한다.

한국산악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산꾼이자 교사이며 시인인 저자는 조용히 길을 걸으며, 사소한 것이라도 허투루 보지않고 그 속에 담고 있는 ​깊이있는 의미를 되새긴다. 더불어 그 길에서 만나는 흔하디 흔한 촌부들에게서 따뜻함을 배우기도 한다.

19번 국도. 구례 섬진강가 피아골 주유소 옆 / 노천에서 참외를 파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 지리산길 걷다 땀에 흠뻑 젖어 절둑거리며 내려온/ 생면부지의 내게 멀쩡해 보이는 참외 자구 디밀며 / 파는 거 아니라며 깍아 먹으라 하신다. / 가민히 있자. 제일 좋은 것 골라주신다 / 깍을수록 물큰한 향기, 참외가 덥석 깨물어지지 않는다 / '한창 때 왜 그라노? / 버스가 오면 잡아 줄테니 어서 묵으라 '/ 허기를 다독여 재우는 피아가 없는 말씀의 향기 / 풀풀나서 버스가 오도록 다 먹지 못한 참외가 있다. <참외> (254쪽)

자연만 있으면 무엇하는가 사람이 있어야 자연도 있는 법...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울어짐이다. 촌부들처럼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어진 한 편의 그림​같은 삶이 있기에 지리산은 더욱 깊고도 깊은 산이다.

내가 모르는 유담하고 유현한 세계가 있어 침묵으로 쏟아놓는 말들이 은하로 흐르는 평화속에서 한 박자 느린 마음의 속도를 얻으며 간다 천천히, 찬찬히 간다 '간산(看山), 간수(看水), 간인(看人), 간세(看世)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라'던 남명 선생의 말씀이 저 뒤에서 들린다 (121쪽)

​지리산 둘레길은 언젠간 나도 갈 것이다. 그 때 저자처럼 시인의 마음으로 시인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걸어갈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허황된 이야기일 것이지만 언젠가 그리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도보여행자이기에...

심지어는​ 그 흔한 자동차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는 진짜배기 뚜벅이기에...

 

 

지리산둘레길에 대한 시인의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책 한권을 다 읽었음에도 그 마음의 한 조각도 얻지 못한 무지한 독자의 후기였음에

언젠간 그 길을 걸으며 그 시인의 마음 천분의 일이라도 알게되는 날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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