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 국내편 - 한국 근현대 문제적 인물들을 찾아 떠난 역사 기행, 전봉준과 정약용에서 ― 김수영과 노무현까지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지음 / 바다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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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앞에 감격하며 서 있던 적이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갔던 2013, 키에르케고어와 그의 연인 레기네 올센의 무덤 앞에서 한참을 잠잠히 서있었던 기억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살아서 만나지 못한, 만날 수 없었던 위인을 이렇게 만나다니, 묘지는 그렇게 평등했고 개방적이었다.

 

이 책은 우리 땅과 우리의 기억과 마음에 묻은 옛사람들의 묘택을 찾아 떠난묘지기행이자, ‘조선 후기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정치인, 사상가, 예술가, 문인을 다루고 있는 근현대 인물사이다.

 

1부 근대로의 꿈과 좌절, 2부 친일과 항일의 갈림길에서, 3부 시인과 작가들의 내면풍경1, 4부 나라를 세우는 일, 바로 세우는 일, 5부 시인과 작가들의 내면풍경2,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고, 중간 중간 짧은글(1~6)이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은 정약용, 김정희, 유관순, 안중근, 윤동주, 염상섭, 이중섭, 전태일, 김수환, 기형도 등 이름은 알지만 구체적인 삶의 족적을 잘 몰랐던 인물들에 대해 묘지의 풍경과 함께 그들의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묘지는 그런 곳이다. 가서 마음을 내려놓는 곳. 가서 한껏 감상에 젖는 곳.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삶이 막혀 있을 때 가서 한참 울다 오는 곳.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오는 곳. 우리 안에 가뭄처럼 메마른 눈물의 샘을 퍼올려 마음을 씻고 정화해 오는 곳. 효율과 경쟁만을 부추기는 도시와 가상공간을 벗어나 성찰과 정화의 의식을 치르는 장소가 묘지다.”

 

묘지에 대한 정의를 통해 효율과 경쟁보다는 성찰하는 삶의 모습을 지향하는 저자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삶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은 묘지 속 인물들에 대한 선정과 책의 목표와 방향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무덤 안에 잠든 이들을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해보고자한저자의 노력과 정작 중요한 가치들이 폄하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책에서 오롯이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리영희도 백기완도 김근태도 노회찬도 이외수도 없다. 참 쓸쓸한 세상이다. 그리고 또 한 어른, 문익환도 없다.’는 글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왈칵 뜨거워지기도 했다. 시대의 어른이 없음을 안타까워한 저자는 시대의 어른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거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우리 시대의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저자의 그리움을 담은 연서이기도 하다. 전국 방방 곡곡을 찾아나서며 몸으로 쓴 위인전, 저자의 정성과 성실함에 박수를 보낸다.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에는 산자가 망자에게 구해야할 삶의 지혜와 죽음을 읽고 배워서 가슴에 품어야할 가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의 묘지앞에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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