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이라는 제목은 실로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속삭이는 것 같이 와닿았다. 그믐 날 우주알은 세계로 누군가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게 그 남자였다. 그의 과거는 평범한 삶이 아니다. 그렇다고 매우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있을법한 이야기...... 그래서 더 가슴이 아려왔다. 남자도 가슴이 아팠고, 여자도 가슴이 아팠고, 아주머니도 가슴이 아팠다. 엄마가 된다는 게 그런건가보다. 내 아이가 나쁘더라도 내 배 아파 낳았으니 더 가슴 아픈 것. 개인적으로 미래에 가해자거나 파해자거나 내 아이가 이런 일을 겪지 않을까 마음 조리고 씁쓸한 기분으로 읽어내렸다. 소설 속에서 작두로 책을 잘라내어 페이지가 어지러워진 것 같이... 책도 시간대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다. 그야말로 우주알을 품고 바라보는 기분이다. 우주알이란 것은 그믐만큼 매혹적이다. 우주알을 품은 그는 세계를 패턴으로 본다. 패턴은 단조로우면서도 예측되지만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철봉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동아리실에서 숨막히는 청춘의 설렘도 맛본다. 그르릉 여유로운 고양이도 함께 만나고 둘의 시간을 공유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A와 B 중에 이별하는 방법을 선택하라고하는데, 어느 연인이 이별 방법을 미리 선택하고 싶을까? 또 그것이 뜻대로 될까? 두 사람의 이름을 보는 내용도 재미있었다. 나는 흔치않은 이름을 갖아서 흔하거나 발음이 쉬운 이름이 부러웠다. 큰보람 중간보람 작은보람까진 않되더라도 내가 살면서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을까? 이름 역시 세계를 보는 패턴 중에 하나이다. 이름은 가치관도 삶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곳곳 서울 지명의 이야기와 유래들이 더욱 내 친구 이야기 같이 들렸다. 미래의 내 자식들의 이야기일 것도 같고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소곤소곤 담담하게 나누는 이야기 같아 매력적으로 들렸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믐 낭 찾아온 우주알웅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우주알이 없는 당신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