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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이 우에니껴? ㅣ 푸른사상 산문선 2
권서각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8월
평점 :
어느 날 지인의 차를 타고 가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짙은 연두색의 단정한 양장본에 제목은 <그르이 우에니껴?>였다.
“이 분 책 나왔네요?”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물었다. 지인은 얼마 전에 책이 나왔다며, 마침 올해가 환갑이어서 출판기념회 겸해 조촐한 막걸리 잔치도 있었다고 한다. 시를 쓰는 권서각 선배님이었다. 희끗한 장발에 바바리가 잘 어울리는 분인데, 10년 전쯤에 처음 뵙고 술자리에서 몇 번 스치긴 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산문집은 마음의 일기다. 이 책에 그 분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차 안에서 후루루 몇 페이지를 읽었다. 표제가 된 ‘그르이 우에니껴?‘라는 글인데, 할 말 없는 입장이 된 어떤 사람의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이 고장 사투리의 맛과 거기에 깔린 심성을 구수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그 분에게 전화를 했다. 반갑게 받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에 집 근처에서 만나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나 어디 있는데 자네는 어디에 있나?’
이런 통화를 하고 5분 후에 동네 안에서 바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마침 바쁘던 때라 책상에 올려만 놓고 바로 읽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달려들어 읽기 시작해 어제 이 책을 다 읽었다.
형식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은 산문집인데 마치 대하 장편소설이라도 읽은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참한 동화 같기도 하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작가는 이들의 삶에서 길어 올린 뭉클한 해학과 고즈넉한 이심전심의 풍경들을, 따뜻하고 통쾌하게, 때론 구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간다.
쓸쓸히 돌아서던 한 남자, 술 마시는 모습이 슬퍼보이던 사람, 천상 장난꾸러기이던 촌부의 익살스러운 표정,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이 마시던 낮술, ‘그르이 우에니껴’ 하며 머쓱하게 웃던 그 총각......
그는 만난 것이다. 그네들의 열망과, 자부심과, 꿈과 상처를 함께 한 것이다.
자기와 많이 같고 많이 다른 사람들, 그럼에도 같은 것에 아파하고 같은 것에 외로워하는 사람들, 자기처럼 허술하고 자기처럼 웃는 사람들, 자기와 같은 것을 꿈꾸었고 자기와 같은 것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고 속 정 깊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이름이 있다. ‘김봉두’가 있고, ‘성자가 된 종지기’, ‘불후의 명작을 쓰는 동화작가’, ‘개 맥이는 김씨’, ‘장가 못간 이씨’, 쥐뿔도 없어 ‘쥐뿔’이고 시위를 잘해서 ‘강시위’이다.
그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고 했다. 이 책을 쓰며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어느 날 새벽에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 몇 시까지는 학교에 나가야 하는 분이라 그 시간에는 주무시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막걸리 한 잔 하며 이 책의 꼭지 하나를 읽던 중이었다. ‘개 멕이는 김씨’ 이야기다.
개 멕이는 김씨는 이런 이야기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양복 일을 가장 오래 한 사람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양복 일을 시작하여 선배들 다 죽고 동료들 다 그만둔 지금까지 양복 일을 하고 있다. 손님이 거의 없어 조만간 가게를 닫을 생각이다. 그는 종종 낮부터 술을 마셔 많이 취하곤 한다. 그런 날은 손님도 안 보이고, 하느님도 안 보이고, 처제도 안 보인다.
“씨발, 까불고 있어” 옆에 누가 있건 눈에 보이는 것마다 깨버린다.
그 다음 날 아침의 풍경을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런 대형사고를 친 다음 날 그는 완전히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완전한 신사다. 아내가 아무리 모질게 추궁하고 나무라도 흔들림이 없이 얌전하다. 반성의 빛이 역력하다. 그리고 기나긴 자숙의 시간이 지속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잠자는 척하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깨워 훈계하고 가끔은 때리고, 어머니에게는 차마 들을 수 없는 욕들을 해대었다. 골목 저 끝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던 날은 황급히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어느 집 담장 아래에서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혼하겠다고 했다. 나는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는데, 도무지 이혼할 기미가 없었다. 왜 이혼을 안 하시냐고 하자 그냥 우물쭈물 하신다. 몇 번이나 그것을 반복하시기에 나중에는 이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아버지가 술 마신 다음 날의 모습이 저 문장들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저승사자 같던 아버지가 완벽히 얌전해지던 모습. 어머니의 어떤 말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십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때 아버지는, 당신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외로웠다는 것을.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경멸하며 바라보았던 아버지 생전의 어느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기나긴 자숙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책에서 ‘개 멕이는 김씨’라는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제법 돈 좀 벌고 있는 소장수 박씨와 그가 만났다. 술이 얼마간 오르자 그가 말한다.
“당신, 소 멕이지?”
“예.”
“당신 소 몇 마리야?”
“한 100마리 됩니다.”
“난 개 멕여.”
“몇 마린데요?”
“한 마리.”
영주는 역시 선비의 고장인가 보다. 심야에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으면 대개 다음 날 바로 전화를 하는데, 한참 지나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더니 그가 말한다.
“참, 얼마 전 밤에 자네 전화가 와 있던데, 무슨 일 있었나?”
무슨 말을 하겠는가. 새벽 2시 반에 전화를 걸면 용건은 딱 하나다.
그가 짐짓 모른 체하니 나도 그냥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