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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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찾는 대신 아버지는 홀로 세탁소에 남아 자서전을 읽는 데 더 몰두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접어두거나 밑줄을 그으면서 지난날을 회상했습니다. 그런 문장들은 주로 “행복한 자영업자는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든가, “최선의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어두는 것이다. 뚜렷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장부를 쓸 것. 아무리 하찮은 세탁물이더라도” “최고의 고객이었고 최악의 고객이었다”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30년만의 폭설이라던 그해의 아침을 떠올리며 “상가의 긴 복도를 지나자 눈밭이었다. 건물 밖의 바닥이 하얘졌다”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상가 사람들과 단체로 중국 여행을 떠났던 시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전당강의 도도한 물줄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임안 우가촌을 휘감아 돌아 동쪽 바다로 흘러간다.

‘영웅문’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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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 현실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길 바란다. 하다못해 앞서 걷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여 가던 길을 멈추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로부터 달라진 삶은 누가 부담하는 겁니까. 무책임하게 왜 그런 것을 바란답니까. 왜 함부로 남의 인생에 끼어드나요. 가던 길을 멈췄다가, 다시 걷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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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누군가의 삶을 완벽히 뒤바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 저자의 능력보다는 독자의 잠재력이 더 요구되는 것 아닙니까. 제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 한들 그걸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잠언 시집 한 구절에 새삼 감동을 받았을 때는, 그 책의 무게감 때문만이 아닙니다. 마침 그런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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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그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잃어버렸다. 잊은 게 아니고 처음부터 잘 듣지 않았으니까 그냥 잃어버렸다. 찢어진 채로 아니면 군데군데 지워진 채로 들었는데 남자는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자기 친구 중에도 영화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나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이 이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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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영화라고는 나도 잘 몰라요,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다. 그게 당신이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는 뉘앙스로 들릴 것 같아서 신경쓰였다. 그런데도 그 말을 무르지는 않고 여전히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게 남자를 더 말하게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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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전부터 오래 내리고 있었는데 쌓이지는 않았다. 나도 무언가를 쌓자고 듣던 것은 아니었으나 젖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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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무섭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틀렸다고 확신한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 세계가 끝나고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도를 아십니까?” 묻는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저들이 말하는 게 진짜 맞는 게 아닐까 싶어서 불안해진다. 나만 모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내가 다 따라가지 못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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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세계가 그토록 분명하고 확정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래서 무엇도 의심할 필요 없이 믿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소설은 세간의 떠도는 말처럼 무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암담하므로,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아직 산재해 있는 세상이므로, 나를 계속해서 쓰게 해주지 않겠나. 그러므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틀렸더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투고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들도 그것을알고 있다는 점.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이용할 거라는 점.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성찰과 참회인 척 교묘하게 속일 수도 있다는 점. 나아가 논리와 합리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할 거라는 점. 무엇보다 기대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

더불어, 선명하게 나쁜 것을 색출해내는 일만큼 복잡하게 나쁜 것을 감각해야 할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게 슬픈 사람들 사이에 민감하게 아픈 사람들도 있다는 점. 모호하게 다친 사람에게는 다른 종류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 아니라면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필요로 할 때가 있었고 애매하게 그게 도움이 되었고 모호하게 괜찮아졌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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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유독 인습과 관행에 따른 수직적 위계과 집단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대체로 그것은 악습인 경우가 많다. 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의 해결이 가능한지 어렴풋이 알게 된 듯하지만, 아는 것을 그렇게 실천하는 일은 또 꽤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온전한 ‘개인’이, ‘혼자’여도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이 사회의 아주 중요한 변화이지만, 이를 강조하는 세태에는 자기 주관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아주 불확실한 존재이며, 주관이나 확신은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가치이다. 개인은 불안하고 편견속에 있으며 어차피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개인적이지만 이기적이지는 않겠다는 태도보다 이기적이니까 지킬 건 지키겠다는 태도가 어쩌면 더 솔직한 것이 아닐까.

-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고두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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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을 묶고 정리하는 동안 내가 쓴 소설들이 너무 못나 보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었다. 나는 종종 어떤 일에 오기를 부리거나,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는데 지금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기분이다.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얼마 후에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구입하였다. ‘젊은작가’라는 어감이 좋았고, 상을 받은 작품들이니 가치를 인정받은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작가들 중 일부가 나중에 더 유명해지면 그때가서 ‘사실은 나는 이 작가를 젊은작가상 수상했을때부터 관심있게 보고 있었어.’라는 자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17년 젊은작가상 가장 첫 작품이었던 임현의 고두를 읽고, 뒷 부분은 내버려둔 채 바로 임현의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을 구입했다. 고두라는 작품의 신선함과 중간중간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문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위에서 제일 마지막에 인용했던 노태훈 작가의 문장에 신경이 쓰였다. ‘개인적이지만 이기적이지는 않겠다는 태도보다 이기적이니까 지킬 건 지키겠다는 태도가 더 솔직하다’는 말.

어쨌든 그 개와 같은 말을 읽기 시작할땐 올 해 읽은 소설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이야기하며 다녔다. 가장 처음 실려있었던 ‘가능한 세계’는 짧은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신선한 소재와 지루하지 않은 표현이 좋았다. 소설집을 찾아 읽게 만들었던 ‘고두’는 말할 것도 없고,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지인의 영화 촬영을 돕다가 만난 남자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내용, 발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증명해 낸 교수와 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임현의 글을 18년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먼저 만나봤었더란다. 다시 책을 펼쳐서 그 소설을 읽었는데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글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어쩌면 난 임현이 남녀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글에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개와 같은 말 뒷면엔 작가의 말이 실려있는데, ‘나는 종종 어떤 일에 오기를 부리거나, 내가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는데 지금도 그때와 거의비슷한 기분이다’ 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충분하다. 내가 종종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명확하고 담백하게 표현해낸 사람을 이전까지는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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