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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열하일기>를 '유목적 텍스트'라 했다. 기실 이 한마디 언표속에 이 책의 모든것이 들어있다. "유목'은 내게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근데 '유목'의 핵심개념 역시 '친숙과 낯섬'이란다.즉 유목은 단순한 편력도 유랑도 아닌 움직이면서 머무는것,떠돌아 다니면서 들러 붙는것이다.지금 여기와서 온몸으로 교감하지만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한다.한마디로 그것은 세상 모두를 친숙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마침내는 세상 모든것들을 낯설게 느끼는 것이라고..친숙과 낯섬의 끝없는 변주, 여행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유목적 텍스트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재발굴 해 낸 것이다.
낯선 풍속과 사람,사건의 열거뿐인 대다수의 여행기들은 외부자적 시선으로 대상을 흘깃 일별 할 뿐이다. 그곳엔 삶의 거친 호흡도 표정도 생략된 체 오직 주체의 시선에 의해 재단 된 소외되고 객체화된 대상만이 남는다. 그러나 연암은 열하까지의 여정에서 마주친 대상들(오랑캐놈들 오랭캐놈들의 문명이라는 18세기 조선인들의 인식물들)과 찐한 접속을 시도하고 또 새로이 발견해 내고 건져내고 열광한다. 위 아래를 불문하고 중화주의로 똘똘 뭉친 동료들의 몰이해 속에서도 전신의 촉각을 동원한 낯선 경계 넘기는 한짬의 쉼도 없다. 연암의 그 열정이 '경이'였고 그보다 더한 경이는 연암의 여유와 여백을 나타내주는 고도의 '유머감각'이었다.
기실 '유목적'인 것은 <열하일기> 한 측면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연암의 삶 자체가 유목적 삶이라 할 수 있다. 출세가 보장된 명문 사족이었지만 허구화된 과거시험을 통해 기득 집단에 속하는 것을 거부했고, 그 당시 불문률과도 같았던 고대 중국의 고문체를 버리고 18세기 조선이라는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연암체'를 창안했다. 작가는 연암체를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인 '리좀'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없다 한다. 리좀은 덩이줄기라는 뜻으로 수목에 대립된 개념이다. 뿌리를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지를 뻗는 것이 수목이라면, 리좀은 뿌리라는 중심도 없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특성을 지닌다. 유목적 인간이었던 연암은 자신이 접속하는 동시대의 살아 숨쉬는 대상과 웃고 숨쉬고 노력했던 것이다. 18세기 조선 민중의 역동적 삶을 담아 낼 수 없었던 고정되고 적체된 과거제나 고문체가 그에겐 허위의식만 가득한 폐기처분되어야 할 그릇일뿐이었다.
정조는 '문체반정'까지 일으켜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해치는 소설류,소품체,고증학을 금지시키는 소동까지 벌였으니, 문체가 단지 사유를 담는 그릇을 넘어 사유를 선지정하는 선험적 틀임을 정조도 알고 연암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그래서 정조는 문체반정을 통해 구멍이 뚫려가는 지배체제를 다시 쌓아 올렸고, 그 배후자로 연암을 지목해 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 등이 자유자재한 연암체를 버리고 자신의 울타리에 '들러붙기' 할 것을 여러 경로로 전한다. 그러나 연암은 <증좌소산인>에서 "비슷하다 함은 참이 아닌데..눈 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있거늘/ 어쩌자고 머나먼 옛날에서 찾는가?..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데도 /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지 않으리라" 고 도도히 일갈하며 새로운 경계와의 접촉을 향해 물같이 유려하게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날 뿐이다.
청조 전성기의 한축인 건륭제의 천추절에 도착한 세계최고 국제도시'열하'는 벽촌의 조선인에겐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맛볼 열광의 도가니였음이 틀림없다.더구나 열린 정신의 소유자인 연암에게 그 수많은 낯선 경계들이 어찌 다가 왔을것인가? '그곳'에 '연암'이 있었기에 '천의 목소리' '천의 얼굴'을 지닌 <열하일기>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바로 연암체로 단련된, 그보단 연암체를만들어낸 시대정신으로 무장된 연암이었기에 <열하일기>의 변화무쌍함은 끝이 없다. 간추려 지지않는 책이 <열하일기>에 대한 솔직한 소감이지만, 그 부분 부분에서만은 접촉이 휼륭히 되는 책 또한 <열하일기>이다.
회색지대에 머물던 실학자군에서 3차원적 입체영상으로 내안에 자리잡은 연암의 진가가 더 한층 고조된 곳은 그가 쓴 형과 누나, 절친한 친구 정철조에 올린 제문을 읽고서다.처음 읽고 바로 눈물이 났으니 말이다. 아! 제문을 저리도 쓰는 구나!!!감동의 충격이었고 완역본을 구해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거기서 굳어졌다. 연암의발견!! 유쾌한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