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의 삶이 초반부터 안쓰러움의 연속이네요. 집안에서 경원시되는 상황이라 늘 모친의 눈치과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에 쫓겨나듯 살다가 정략적인 쓸모로 써먹기 위해서 국내로 들어와 이혼했지만 돈이 많다는 남주와 선을 보게 되는데 막상 선자리에 나가니 남주는 결혼 생각이 없다는 걸 건조한 투로 말합니다. 여주 입장에선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해서든 이 결혼을 성사 시키라고 엄청난 압박을 가하는 상황인지라 난처한 지경이 되는데 그래도 여주를 본 이후 남주가 서서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점점 여주에게 빠져드는 과정들이 로설적인 정석을 밟아서 좋았어요. 여주에게 고초가 있긴 하지만 남주를 만나서 행복해지는 이야기라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각별히 알고 지낸 유디스와 레온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너무도 친근한 사이에 어릴 때부터 가족처럼 지내온 두 사람 사이가 전쟁터에서 돌아온 레온과 유디스가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해가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합니다. 유디스는 여전히 레온을 가족처럼 여기지만 어느새 훌쩍 번듯한 남자로 성장한 레온은 유디스에 대한 감정들이 남다릅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족처럼 평온한 관계가 유디스가 여러 곳에서 청혼을 받은 걸 알게 되면서 레온의 감정선들이 급변하고 집착남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적극적인 남주 매력있네요.
늘 불만족스런 연애의 끝을 달리기 일쑤인 여주인공 지연은 역시나 이번 만남의 상대역시 실망스러웠고 결국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하고 만다. 헤어지고 싶어하는 지연과 달리 늘 상대들은 그런 지연에게 추근대고 좋게 헤어지는 꼴을 못 보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지연은 모델로 데뷔한 지 12년 차인데 하도 남자에게 실망하다보니 별 기대도 없는 상황이 된다. 모델일로 알게 된 사진작가 연석과는 오래 알고 지냈지만 그가 먼저 지연에게 들이대는 일은 없는 사이다. 별 생각없던 연석을 어느 순간 의식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기준에 연석이 들어맞는 걸 알게되는데.여주인공 성격이 솔직하고 남주가 까칠한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제 취향이라서 잘 봤습니다.
한동안 단순한 클리셰 소재 위주로만 보다가 이젠 작가님 신간이 발매된 것을 알고 바로 구매했는데 자료조사나 세계관,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을 설정하는 데 많이 신경 쓰신 티가 나는 글이었습니다. 서정이란 캐릭터가 유약하거나 무능하지 않고 능력도 있어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안 라우란 인물이 정과 엮이게 되는 과정들이 처음엔 우연으로 인한 만남인 줄 알았다가 결국 그의 계략인 것을 알고 역시나 적절한 계략남은 소설의 흥미를 키우는구나 싶어서 읽을수록 이안에 대한 매력이 커지네요. 제멋대로 서정을 휘두르는 듯하면서도 또 진심인지 아닌지 헛갈릴 정도로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대체로 무심한 편인 서정이 임자를 만났구나 싶기도 하고요. 적당한 사건과 비밀도 글 곳곳에 깔려 있어서 읽어나갈수록 뒷 전개가 궁금해지고 너무 사건 위주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이라서 기대 이상으로 잘 봤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