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쁜하루 > 시 더이상 분석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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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신경림 시인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나의 시 읽는 방식, 나의 시 감상법이 틀린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짧디 짧은 신경림 시인의 감상문이 내게 희망을 주고 소망을 주었다. 너의 감상법이 틀린것이 아니다. 잘 하고 있다. 그저 그렇게 마음에서 드는 생각들이 제대로 감상하는 거란다... 라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신경림 시인은 오로지 자신만의 기준으로 시를 선택했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시를 감상했으며 시인이 좋아하는 그림들을 집어 넣었다. (솔직히 그림은 시인이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웬지 시를 많이 닮은 그림들이기에 신경림 시인이 좋아할 것 같다. 맘에 들지 않는다면 함께 싣지도 않았겠지?) 매우 주관적인 선택과 선택된 시들의 향연이지만 정말 최고의 향연이며 풍성한 향연이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시를 어떻게 배웠던가, 한줄 한줄 밑줄 그어가며 이것은 무엇을 비유한 것이고 이 것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이다 등등 얼마나 분석하며 배웠던가. 그러다보니 시는 정말 재미도 없고 어렵기만 한 그런 분야가 되어버렸다. 언젠가 TV 문화프로그램에 나오신 김남조 시인이 하신 말씀 중에 어떤 수험생이 선생님의 이 시의 이 행의 뜻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렇게 배웠는데 그게 맞나요?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런 답도 해줄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체 감상에 정답이 어떻게 있을 수가 이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오신 수많은 시인들은 자신들의 시가 그렇게 해부되고 분석되어 갈갈이 찢겨지고 문제로 만들어져 정답을 찾는 것으로 변질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서일까! 신경림 시인은 감상에서 말을 아끼고 분석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신경림 시인의 마음만을 살짝쿵 내려놓을 뿐이다. 어쩌면 신경림 시인의 그 짧은 감상평 마저도 군더더기 일지 모른다. 또 다른 정답이라고 여길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아~ 이시는 이렇게 느끼는 거구나..라고 말이다. 난 처음 꼭지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고 싶어 부분은 신경림 시인의 감상평도 같이 읽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시만 읽었다. 그리고 그림을 읽었다. 그리고 이동업 화백의 그림에 푹 빠져들었다. 다른 분들의 그림도 시처럼 간결하고 부연 설명이 없는 그림이였지만 이동업화백의 그림은 그야말로 시였다. 은은함이 출렁이고 파도가 되어 내 마음에 부딪혀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 오랜 동안 곱씹을 수 있어야 하고, 오랜 동안 생각 할 수 있어야하고, 남는 것이 없어도 기뻐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 마음이 메마른 사람들에게 이 책 처음처럼의 시와 그림들이 싱그러운 물줄기를 선사해줄 것이다. 얼마전 읽은 내려놓음도 좋았지만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내려놓게 만드는 짧은 싯구절과 그림들이 참 편안한 마음을 준다. 시는 그림으로 따지자면 풍경화나 인물화, 고전주의 낭만주의 뭐 이런 그림보다는 따뜻한 추상....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한눈에 봐서는 그 의미를 알기가 힘들고 이거 뭐야~ 라며 지나치기 쉬우나 곰곰히 가만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의 열정과 사랑과 에너지가 팍팍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시낭송을 하며 내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가져봤다. 그리고 어떤것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감상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