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속의 악마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김병욱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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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You Need Is Love!

 머리에 꽃을 꽂고 한 여인이 아주 따스한 미소로 다소곳하게 다가서고 있다. 그녀의 발에는 걸친 것이 없고 그저 어디에선가 스며나온 피를 밟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신비롭게 다가간다. 그녀가 가는 방향으로 5m도 안되는 거리에 눈을 가린 채 화이바를 눌러 쓴 군인이 있다.

일순간 긴장감이 감돈다.

그녀는 흐르듯 그 군인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발치 어딘가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한 청년의 장발의 부드러움이, 따스함이 촉감으로 다가와 소름을 돋게 만든다.

군인은 표정을 알 수 없다.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똑같은 복장과 똑같은 시선의 차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가는 군인의 뺨에 한 줄기 땀이 흘러 내린다.

그녀의 미소는 더욱 밝아진다. 하지만 미소의 느낌은 사라진다. 차라리 진지하다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내 그녀가 머리에 꽂힌 꽃을 한 손으로 뽑아 그 군인 앞에 선다. 그녀가 가려버린 그의 총...

긴장이 최고조로 오르고 모두들 비통과 절망 그리고 온갖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녀를 바라본다.

시간의 길이따윈 생각해볼 수 없었던 순간이 지나고 그녀가 옆으로 슬쩍 빠진다.

꽃이다. 그녀가 남긴 꽃이 그의 총에 꽂혀 있다.

 그 때 우리 모두의 표정은?

 베르나르 앙리 레비란 이름을 군에 다녀와서 처음 들어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고서 20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기시 내각과 드골 정권으로 대표되던 20세기 중반의 세계는 파시즘에 대항했다고 자부하던 부르주아들의 최소한의 정의도 위선이었음이 혹은 착각이었음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었다.

이젠 정의가 구현되기에도 사회주의가 대안이 되기에도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기에도 파시즘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파시즘은 교묘하게 변형된 형태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벵자맹의 마지막 고백은 파시즘을 타도했다는 그들이 결국은 또다른 파시스트들이었음이 드러나고 그러한 파시스트들을에 대항하자고 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또다른 파시스트들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의 비극성은 내게 엄청난 전율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드골 정권, 68학생운동 그리고 팔레스타인 전쟁과 이탈리아의 폭력 투쟁으로 이어지는 정의를 신봉하던 자들은 결국 자신들 안의 파시즘에 지배당하고 만다. 장의 에두아르에 대한 협잡과 폭력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이어지는 애정결핍, 파라디의 위선과 음모, 지금은 죽은 아라파트의 타협과 변절, 생선장수의 폭력성 등은 모두 파시즘에 반대했다는 사람들이 어느새 자신 속에서 파시즘을 키우고 있었음을 여설히 보여준다.

역사는 끊임없이 한 개인의 삶과 사회에 저주를 내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또 어떤 희망없는 저주의 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금기로 인해 결국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벵자맹은 사실의 폭로 이후에 모든 행동의 기반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치욕과 용서를 대신 구하는 의지가 된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대인들이 결국 나치를 능가할 만큼 팔레스타인 민족을 핍박하자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말리카를 통해 사회와 역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한 그가 결국 죽음의 고비에 이르러 찾은 것은 그토록 무시하던 마리였다. 또한 그가 믿고 따랐던 파라디는 결국 그의 비극적 종말을 계획한 악마에 다름 아니었다.

이토록 모든 비극이 그를 찾아 뒤흔드는 과정은 이 작품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믿는 모든 가치에 대해 이토록 회의적으로 성찰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임신한 여성의 심리 묘사와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 역시 뛰어나다 못해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흐름이 뛰어난 번역 작업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면서 이 가을 내가 가졌던 60년대 젊음의 낭만과 희열에 또 하나의 깊고 깊은 색깔을 입혀준 이 책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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