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쉬었다가 - 따뜻한 남자 손봉호 교수의 훈훈한 잔소리
손봉호 지음 / 홍성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손봉호 교수를 처음 방송에서 보았을 때는 '꼬장꼬장하게 생기신 노인 분이 말씀 참 잘하시네' 정도로 생각했다.70이 훌쩍넘은 나이에도 정확한 발음으로 다소 진보적인 태도로 사회를 바라보시는 것이 꽤 신선했다.이 책을 읽어보니 그 분의 '대쪽 같은' 품성은 유학을 공부하신 저자의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하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음과 그름 보다는 이익과 불이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는 이 시대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이 책은 정말 '쉬었다'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처음에는 비교적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들을 배치하고 뒤로 갈수록 진지한 내용들이 많다.한가지 구성 및 편집에서 아쉬운 점은 글이 쓰여진 연대가 없다는 것이다.아무래도 수필은 그 당시의 주요사건이나 세태와 관련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쓰여진 연대가 나오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을 읽고 난 후 손교수님에 대해서는 두 가지 마음이다. 어떤 부분은 '존경'스럽고 어떤 부분은 '부럽다' 저자에 따르면 '부럽다'는 것은 내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존경한다'는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당신 만이라도'의 의미라고 한다. 정말 그런거 같다.


<수첩에 옮겨 쓴 글>


윗 사람에게 아부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출세하는 사람은 칼 들고 돈 빼앗는 사람과 오십보 백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부러워 하는 사람은 강도를 부러워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 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신선했다.


우리 집 벽시계는 모든 부분이 제 할 일을 다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진실하게 보여,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모조품의 시간보다 더 정확한 것 같다.

- 저자의 집에 있는 태엽감는 추시계에 관한 대목이다. 애초에 오리지널은 모든 부분에 의미가 있고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모조품은 겉모습만 흉내내기 때문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부분이 생겨난다. 시계같은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절차나 관례라고 부르는 것들에도 이런게 많이 있다. 허례허식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도 원래의 취지보다는 전통이라는 말로 무조건 따르다 보니 생겨난 것들은 아닌지...


내가 지금 그 친구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런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멋진 것인가는 잘 안다. 그런 배려를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 그 친구도 대단하지만 손교수도 확실히 훌륭한 사람이다. 대부분 큰 배려를 받으면 그 순간에는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도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어린이용 장발장에서는 훌륭한 신부의 관용만 강조하지만 그런 배려나 관용을 받고도 회심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살아야지.


젊은 사람의 생각이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친 것은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사용되었을 뿐 그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을리가 없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붕에 올라간 뒤에 사다리는 밀어버리라"고.

-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오면 요즘은 잘 못하는 낯 간지러운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넌 내가 했던 말 중 어떤게 기억나냐?" 대부분의 경우 별로 명확한 대답을 못하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뱉었던 말들 또는 보여준 행동들이 그들을 좋은 쪽으로 인도하는 사다리의 한 부분이 되었기를...'


호텔 수위들이 수상적게 바라보고, 기사들이 차를 대령하는 사이로 유유히 걸어 나와도 별로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차만 타는 사람들이 헬스클럽에서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자전거 헛바퀴를 돌리고, 시간을 내어 등산 가방을 메고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하라는 주신 시간과 힘을 엉뚱한데 낭비한다고 놀려주고 싶다.

- 요즈음,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누가 남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남을 의식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의 눈 때문에 분수에 맞지 않는 지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 저자의 당당함은 절약을 강조하는 선비님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소신있고 지각있는 미래파의 생각이라 하겠다. 운전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 나도 미래파!ㅋㅋㅋ


피해자 동의 없이 용서하는 것은 월권이다.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고상하지만, 다른 사람의 원수를 용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 교수님은 사형제도에 대해 이 이야기를 했으나 난 '광주청문회'가 생각났다. 그 때 내가 보기에 가장 어이없던 것은 한 국회의원의 질문이었다.

"그들을 용서하시죠?" 나름 피해자들 편에서서 이야기하던 중이었으나 가족을 잃거나 본인이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아직 가해자들이 뉘우치지도 않았는데 용서라니... 


민족은 피가 아니라 역사, 언어, 행동방식, 가치관 등 문화가 결정한다. (중략) 예를 들어 한국말로 생각하고 한가위를 자신의 명절로 느끼는 사람은 인종과 관계없이 모두 한민족이다. 짐승은 생물학적 법칙에 의해 결정되나 사람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임을 명기하지 않기로 했다던가 논란 중이던가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나도 우리나라에 대해 불만도 있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참 감사하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루어 낸 것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노골적으로 동양권 사람들을 무시하며, 여전히 서구 사람들에 대해 비굴하게 구는 모습들은 너무 답답하다. 예전의 '명예백인'이라 불리우며 그 칭호를 즐겼던 일본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싫어진다.


독자를 존중하는 글은 독자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이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글을 써야 하고, 독자들에게 가장 큰 유익을 주려고 애를 써야 한다. 독자에게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는 글은 쓰지 말아야 할 뿐더러 발표는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글이 잉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의 시간을 낭비케 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 <읽혀야 글이다>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곳에 글을 쓰며 조회수에 신경이 쓰인다. 비슷한 글을 짧게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면 하루만에 '좋아요'가 수십씩 올라가는 반면 이곳에 쓰면 조회수가 하루만에 두자리 숫자가 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소수라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있으면 교사가 수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 곳을 찾는 '소중한 그들'을 위해서 오늘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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