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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이 도시에 살고 싶다면, 그 전에 미리 세 번의 반전을 생각하라.
그러고 나서 거짓의 이면에서 진실을 봐야 하며,
다시 그 진실의 이면에서 거짓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크람 찬드라, <신성한 게임> (p.571)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단숨에, 책 한권을 마셨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신작, 이 책은 상상 이상 이었다.
6인의 용의자라는, 찾을 테면 찾아보라는 듯한, 제목에서부터 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의 한 호화로운 파티장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의 이름은 비키 라이, 인도 내무 장관의 아들이자 재벌 총수로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 자축파티를 벌이던 중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6인의 용의자가 체포되고 이때부터 소설은 달리기시작한다.

피고인은 언제나 가장 매력적인 존재다.
                                     -카프카, <심판> (p.19)

6인의 용의자, 이 6명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피해자의 아버지 자간나트 라이, ‘간디’의 영혼이 빙의된 전직 관리 모한 쿠마르,
휴대폰 좀도둑 문나 모바일, 원주민 에케티 옹게, 인도 최고의 섹시 여배우 샤브남 삭세나,
사랑을 찾아 인도로 오는 래리 페이지.

그들의 혐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서서히, 비키 라이를 살인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그들 모두 살인자가 된다.
물론 내 마음 속에서.

하지만 범인은 단 한명, 과연 누가 천하의 악한 놈 비키 라이를 죽였을까.

추리에 추리를 더해 가며 읽는 재미로 내 눈과 손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당신, 추리 소설을 겁내 하던 당신 모두에게 권하는 책 한권.

비카스 스와루프의 <6인의 용의자>
또 한 번 슬럼이야기에 빠져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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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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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 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p. 51)

얼마 전, 나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한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 민들레 홀씨 같이 영롱한 소녀의 이름은 해금이, 마해금.

그리고 지금 여기, 놓여져 있는 책 한 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꽃 향기 만으로 가슴 설레는, 그 고운 청춘의 시절에, 그러나, 나는, 그리고 해금이는, 해금이의 친구들은 참으로 슬펐다. 속절없이, 속절없이, 꽃향기는 저 혼자 바람 속에 떠돌다가, 떠돌다가 사라지고 나는, 해금이는, 해금이의 친구인 우리는, 저희들이 얼마나 어여쁜지도 모르고, 꽃향기 때문에 가슴 설레면 그것이 무슨 죄나 되는 줄 알고, 그럼에도 또 꽃향기가 그리워서 몸을 떨어야 했다.                                ( p. 302   작가의 말 - )

그 시절 소녀는 아름다웠고, 슬펐으며, 이슬을 머금은 이른 새벽 풀잎처럼 수줍게 웃었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눈물지었다.

아홉 송이 수선화, 진만, 승규, 만영, 태용, 승희, 정신, 경애, 수경, 그리고 해금.
소설 속의 그들은 시골 방 아랫목에 아버지 오시면 내어드리려고 데워놓은 밥공기처럼 따뜻했다.
“시간이 몇신데 밥을 안 먹냐. 와라, 밥해주께.” (p. 57)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

나는 승희 엄마의 품속에 안겼다. 승희 엄마 옷자락에서 아주 아주 오래 묵은, 엄마 냄새가 났다. 그건, 바로 흙냄새였다. (p. 65)

제재소 마당에 유일하게 서있는 목련나무 고목의 꽃망울이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는 봄날 저녁, 그늘이 포근히 내리고 있었다. 그 마당으로 환이 나왔다. 환이 나오자 어두운 마당이 환해졌다!                               (p. 105 ) 
 

소녀의 사랑의 등불에도 환한 빛이 들어왔다.

할말도 없었다.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이 나는 좋았다.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을 보면서 환이 염소처럼 웃었다. 달 떠오르는 게 좋아서 그런다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았다.  (p.133)

환은 결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과장 없이 정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똑 같은 말이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리는데 환이 하면 달라졌다. 가령, 똑 같은 꽃을 보고도 다른 사람이 이쁘다고 하면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만, 환이 말하면 그 꽃은 정말로 이쁜 꽃이 되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승희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야, 세상에 안 이쁜 꽃이 어딨냐?”
나는 우겼다.
“세상의 꽃들은 환이 이쁘다고 말해야 그때부터 이뻐진다는 걸 넌 몰라.” (p.131)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스무 살 시기의 쓸쓸함과 달콤함에 관한 이야기.

소설은, 쓸쓸함과 달콤함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에 각기 다른 멜로디를 불어넣고 둥둥탁탁 합주를 이끌어낸다.
그 조합이 눈물겨워 나는 이 소설에 더한 애정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 시절 그들의 청춘은 푸르르다.

모든 것으로부터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시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지난 날의 청춘에 스친, 쓰라린 생채기를 부여잡고 있는 해금이, 그리고 거기 당신.
이제까지의 시간들을 속절없이 흘려 보내고 밀려올 새로운 시절을 기다리고 있는, 잠시 멈춰서 있는 당신에게.
별달리 건네어 줄 것 없는 나는, 목이 메어오더라도 꼭 이 말만은 하고 싶다.

“잘가라,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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