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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빛
백수린 지음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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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질척거림이라는 고름을 낳는다
도무지가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눅진함과 끈덕임의 동반
도와주겠다고 뻗어오는 손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여기서의 아픔이란 타인이 온전히 대신 느껴주거나 감내해 줄 수 있는
물리적 감각이나 단순히 열거된 감정이 아니니까

프러시안 블루의 밤
중력의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한 듯
나풀나풀 눈송이가 어지러이 흩어지면
나는 어스름한 환상을 앓는다
때론 슬픔
때론 그리움
때론 기쁨
때론 외면이란 증상
또 때론 명명할 수 없는 어떠한 질병을 앓다가
그렇게 시름시름 밤은 지나가고
그것들이 바닥의 거뭇한 질척거림이 되어
축축히 발끝을 적셔오기 시작하면
한겨울의 살 에는 빛에 내다 말리어
빛이란 이런 거구나
빛이란 시리고 저리고 차구나
그렇게 명태처럼 마른 발을 쓰다듬으며 현실을 마주한다

환상과 현실의 간극
거리의 가까움과 멂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픔이 아니거나
도피거나 숨어버린 병이다
그 거리를 스스로 잴 수 있게 되는것을
아마도 치유라 부르지 않을까

지금 이 밤과 다가올 참담한 빛과의 간극을
재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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