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스승들 1 - Good Seed 말씀과 삶 시리즈 8
필립 얀시 지음, 나벽수 옮김 / 좋은씨앗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필립 얀시가 쓴 <내 영혼의 스승들>에서 2권 끄트머리에 나오는 헨리 나우웬에 대한 간략한 전기를 읽고 있다. 얀시의 책 중에 얼마 전에 읽다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이따금씩 놀래키기도 했지만, 점점 읽어 갈수록 식상케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 특유의 글쓰기에 대하여 거부감 같은 것이 일었던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저자들이 그런 것처럼, 수많은 책들을 읽고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재생산해 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미치니까, 마치 요즘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먹거리들의 대량생산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같은 저널리스트도 어떤 주제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키보다 더 높게 쌓을 수 있을 만큼의 관련 서적들을 섭렵한다고 말한다. (기독교 대중 작가들 중에는 레베카 피펏의 최근작 <토마토와 빨간 사과> (사랑플러스, 2003)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논픽션으로서 최신 정보와 객관적 탐구의 내용을 종합하여 독자의 지적 요구에 답하는 그러한 부류의 저작방식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식의 글쓰기, 곧 삶에서 우러난 글들이 더 큰 울림와 충격으로 와 닿는다. 예컨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라든지, 법정스님의 『무소유』, 『산방한담』, 『서있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 정약용이 당대의 후학인 변지의(邊知意)에게 말해주었다는 다음과 같은 글쓰기가 그리운 것이다.
 
"사람이 작품을 쓴다는 것은 풀이나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이 그 나무를 심을 때에는 뿌리를 묻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주면 된다. 얼마 지나면 진액이 올라 가지가 뻗으며 잎이 돋는다. 그 다음에는 꽃이 핀다. 그러므로 꽃은 밖에서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얀시가 수년 전에 쓴 『고통의 하나님』같은 책은 그에게 익숙한 저작방식과 글의 성격이 아주 잘 어우러진 예였다고 생각한다. 얀시의 책들 중에 또 다른 한 좋은 예를 이 <내 영혼의 스승들>에서 본다. 언뜻 보면 책 내용이 어떻게 제목과 연관이 있는지를 알기가 어려운데, 조금 주의해서 읽어보면 곧 이 책이 얀시가 영영 탕자로 살지 않고 어떻게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의 영적 오디세이라고 할 수 있다. 원서의 부제를 보면, How My Faith Survived the Church라고 되어 있어서 다소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얀시의 다른 여러 저서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흘리는 교회와 가족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이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인데, 바로 그러한 어둡고 아픈 상처들이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을 만남으로서 치유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제를 붙인 것같다. 그러한 연관을 생각한다면 원제  Soul Survivor를 <내 영혼의 스승들>이라고 번역한 것보다는 <내 구원의 안내자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책을 통하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모두 다 얻을 수 있다. 12명의 다양한 저자들의 전기를 읽게 되는 한편, 그 저자들의 책을 어느 것부터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독서지도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면적인 도움보다는 얀시와 함께 그러한 다양한 현대적 고전들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고, 정통 복음주의자들이 아닌 경우도 있다) 얀시의 안내를 받아 읽어 갈 수 있다면, 독자의 신앙도 그만큼이나 풍성해지는 것이 아마도 가장 값진 도움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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