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eee 사랑하고 싶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표지에는 밝은 연두색 바탕에 분홍빛 곰이 블링블링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고 있고, 출판사가 작성한 책 소개에는 지루한 피자배달부의 삶을 살아가고있는 앤드류에게 어느 날 갑자기 곰과 돌고래가 와서 말을 건다!’ 이런 비슷한 문구가 적혀 있어서 난 틀림없이 지루한 삶에 한 줄기 빛이 내려 쬐는 것처럼 신나는 모험이 시작되는 그런 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책의 제목도  ‘Eeee 사랑하고싶다니까.

그런데 이 책은 곰과 돌고래가 나타나서 말하고 행동하긴 하지만 조금도 귀엽고 앙증맞지 않다. 즉흥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삶을 지겨워하며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자살을 꿈꾸며, 병적으로 우울해한다. 곰이나 돌고래가 나오는 장면에서의 주어를 (정신병자인) 사람으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에서의 곰이나 돌고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의지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곰이나 돌고래,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이라면, 살면서 몇 번의 좌절을 맞본 다음에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 특히 요즘의 88만원 세대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결코 읽고 난 뒤 기분이 좋아질만한 책은 아니다. 만약 이 책의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약간은 괜찮은 처지라서 '그래도 내가 얘보다는 더 낫군' 하고 위안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이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새로운 워드 문서를 열었다. 흰 화면에 커서가 깜박거린다. 자판에 손가락을 대고 쓰려는 찰나, 곰이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날 바라본다.

뭐하니?” 곰이 묻는다. “서평 써내가 답한다. “뭐라고?” 곰이 묻는다. “서평 써내가답한다. “뭐라고?” 곰이 묻는다. “서평 쓰고 있다고내가 답한다.곰은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리며 내 얼굴을 주먹으로친다. 의자가 휘청거리고 머리가 벽에 부딪치고 나는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곰은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끌고 나간다.

어디가?” 내가 묻는다. “사는 건 지겨워곰은 벽을 발로 차자,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곰은 구멍으로 나를 집어 던지고 뒤따라내려온다. 골목길에서는 돌고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다. 곰과나는 나란히 서서 돌고래가 우는 것을 쳐다 봤다. 곰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어떻게 좀 하라는 신호를보냈다. 나는 쓰러질뻔한 몸을 간신히 가누고 돌고래에게 말을 건넸다.“저어.. 왜 그런 거야?” “난 시시하기 짝이없는 이 세상이 싫어돌고래가 훌쩍대며 말했다. 눈물과 콧물이 흘러 돌고래의 몸이 축축해지는 모습을보자 곰과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이 책의 분위기가 딱 이렇다. 희망은 없고, 인간관계는 피상적이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사랑하고 싶고 우정을 나누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리거나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에게 구원이라는 것이 있을까? 없다면, 이 사람들의 삶이 너무 애처롭다. 이 정도라면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쯤이야 애교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도 답이 없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시스템은 너무 거대해서 바꾸기가 어렵다. 그러니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견디라고 할 수 밖에. 하지만 희망을 가지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다. 그런 말들은 너무 공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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