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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평점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로 공중보건학도 함께 공부한 미국의 소아과 의사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하는 "아이들을 위한 웰니스 센터 The Center for Youth Wellness"의 설립자라고 한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한데, 미국에서 최하층 빈민가이자 우범지대인 샌프란시스코의 베어뷰에서 소아과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질병에 대해 놓치지 않고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위험 요인이 무엇이 있을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때마침 선행 연구였던 '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 Adverse Childhood Experience study (ACE study)'를 접하였다. 저자는 이를 더 발전시켜 공중보건적으로 ACE지수로 선별작업을 하여 신체적/정서적 학대, 방임, 폭력 등 유독성 스트레스를 겪은 아이들을 찾아내고 적절히 대처하면 중요한 각 발달 단계에서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만약 ACE 지수가 4점 이상이라면 허혈성 심장질환이나 암, 뇌졸중, 당뇨 등의 질환을 어른이 되어서도 겪을 수 있고 대물림도 될 수 있다. 유독성 스트레스에 대한 치료로는 수면, 운동, 영양, 마음챙김, 정신건강, 건강한 관계 측면에서 다룰 수 있다.
어린시절의 유독성 스트레스가 생물학적인 변화를 일으켜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방치하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신선한 개념이 펼쳐져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또한 빈민 사회에서만 ACE 지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 공개하기를 꺼려해서 그럴 뿐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교육을 잘 받은 커뮤니티에서도 ACE가 높은 사람들이 일관되게 있다고 한 점도 신선했다. 특히 저자가 열과 성을 바쳐 본인의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결국에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행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ACE 연구와 선별검사를 전파하려는 대외활동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에너지가 아주 넘치는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로 느껴진다.
다만, 유독성 스트레스가 단순히 심리적인 영향만은 아니라면서 과학적으로 실제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거로 기존에 있었던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대한 설명 위주로만 있어서 아쉬웠다. 구체적으로 어떤 생물학적인 메커니즘과 신호 전달 체계로 각 질환이 발현되는지 의학적 근거를 새로이 내세우지는 않아 아쉬웠다. 또한 디에고라는, 베어뷰 진료소에서 성장 지연을 겪고 있던 아이를 치료하고 십여년간 살펴보았던 이야기에서, 삶을 정상궤도로 돌려놓고 잘 지내다가도 과거에 유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된 경험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예시를 들었는데, 갑자기 총격사고로 사망한 친구로 인해 극심한 슬픔과 자살을 암시했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는 평생에 걸쳐 질병으로 이끌려고 하는 유독성 스트레스의 생물학적 매커니즘 자체보다는 우범지대에 사는 열악한 환경요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새로운 의학 개념을 전파하면서 구성원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저자의 의욕과 도움의 손길이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