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에픽테토스 지음, 아리아노스 엮음, 강분석 옮김 / 사람과책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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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AD 55-135 추정)는 로마시대 노예 출신으로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라고 한다. 병약한 절름발이였는데 좋은 주인을 만나 스토아철학을 접했다 한다. 법상스님도 이 책을 강연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오래 묵혀 둔 책인데 이번에 완독했다.

에픽테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존경했는지 그를 완전한 인간상으로 설정하고 그가 했던 행동을 본받으라는 뉘앙스의 글이 중간중간에 있었다.

그는 이분법적으로 내적/외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겉모습, 겉치장을 좇지 말고 내면적인 것, 즉 지혜, 자연의 섭리, 내적인 미덕, 정신, 이성을 추구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세상사에서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여, 할 수 없는 것은 수용하도록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성과 의지로 충실하게 해 나가라고 말한다. 여기서 할 수 없는 것에는 자연의 섭리도 포함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지위, 재산, 육체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는 "행복은 그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현대의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상상의 힘으로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점에서 에픽테투스는 로마 시대 사람인데도 우리에게 보다 실용적인 조언을 준다고 하겠다. 아마 에픽테투스가 노예 출신이고 다리를 절며 육체도 병약하였고 당대 로마 황제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을 로마에서 모두 추방하는 등 불가항력적인 일을 평생 겪다보니 세상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있다고 한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외적/내적 이분법적인 사고는 기독교적으로 보이지만, 11장 "본디 내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나 48장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를 보면 어느 정도 불교적인 세계관과 비슷한 면을 보여준다. 다만 48장에서 말하는 마음은 실제로는 이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에 불교와 동일한 의미의 '마음'은 아니며, 지혜로운 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현대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며 절제보다는 욕망을 좇는 가치관이 좀더 우세하다. 어떻게 외적으로 자기를 잘 드러내고 포장할 것인가 고심하며, 부와 지위를 얻는 노력은 자아실현의 과정과 동일시되고 있다. 트로피의 수량은 한정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고 남에게 뒤쳐질까 불안 속에 살기도 한다. 이성과 절제를 강조하는 이 책의 글들이 현대적인 가치관과 대립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슬기로운 독자는 조화와 중용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17장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십시오"라는 글이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 63- AD14)도 임종시에"내가 인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배역을 잘 연기한 것 같더냐?"라고 했다는데 같은 맥락의 말이라 흥미롭다. 혹은 당시의 인생관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40장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인 미덕입니다"에서 '남자와 동침할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에 온 희망을 거는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편견이 비친 부분이었다. 당시 사회가 여성의 지위가 낮고 스토아학파가 그리스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으므로, 사랑을 주제로 담론을 해도 남성간의 사랑을 얘기하는 등 여성은 주체자로서 그려지지 않았던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부분 말고는 전체적으로 본인의 한계 상황에 갇혀 있지 않고 일생 사유에 정진했던 철학자의 통찰이 녹아 있어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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