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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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소설을 읽다보면 “건강한 남성성의 부재”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 꿈꾸는 새, 저녁의 게임, 겨울 뜸부기, 별사 등등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폭력적이거나, 은둔하며 소통하지 않거나, 출장을 갔거나, 집을 나갔거나, 죽었다. 대신 소설 속의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대신해 일을 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가족을 돌보고, 악의가 없고(제니), 죽임을 당한다(부네, 매기). 그렇다면 과연 오정희의 소설이 여성에 관한 소설인 것인가? 여성에 관한 소설 혹은 여성주의 소설, 여성이 중심이 된 가족  소설이라고 좁게 평가하는 것을 나는 자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 소설은 그런 좁은 범위로만 한정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도 100% 완벽한 여성이거나 남성인 경우는 없다. 그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두 성의 성기를 다 갖고 태어난 명백한 예가 아닐지라도, 목울대가 발달한 여성, 젖가슴이 도드라지는 남성, 변성기를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되어도 목소리가 부드러운 남성, 수염이 짙은 여성 등은 흔히 있다. 심리적으로는 이보다 더 많은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따로 예를 들지는 않고 싶다. 남성과 여성의 개념을 규정짓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우리는 어떤 성향에서 좀 더 발달했거나 좀 덜 발달했거나 하는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 복잡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여성이라는 SEX를 가진 사람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지켜낸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이 주체가 된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에게 강요되거나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의무를 대신 지고 있는 것뿐이다. 오정희의 소설 속 여자들은 모두 어딘가 상처와 갈등과 슬픔과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이 여성들을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정희의 소설 속에 건강한 남성성이 부재한다는 것은 즉 건강한 여성성도 부재한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에서 남성성이 부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과 삶의 답답함, 출구 없음, 그래도 살아 나가야 한다는 불안이 ‘불구의 여성성’, 부재하는 남성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불완전하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글귀처럼 우리는 온전히 단 한 번만 산다. 그러므로 예행연습 없이 매번 새로운 일을 겪고 선택하고 지나야 한다. 어떤 것이 당장 더 좋은지 나쁜지, 결국엔 더 좋을지 나쁠지 우리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밀란 쿤데라는 개는 반복하는 시간을 살고, 그 다시 돌아오는 시간 속에서 기쁨과 평화를 느끼는 생명체이므로, 개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반복을 갈구하는 소망이므로 그래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므로 표면적으로는 반복하는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누구도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올 수 없고, 두 번 다시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무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고, 앞이 깜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불구이다. 어떤 인간도, 무수한 삶도 건강하기만 하고 완전한 경우는 없다. 오정희 소설 속의 건강한 남성성의 부재는 우리의 삶이 본디 다리가 세 개뿐인 사각형 식탁처럼 삐걱거리는 채로 태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본디 네 다리가 달린 사각형 탁자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정희 소설의 남성성의 ‘부재’라는 문장에서 ‘부재’라는 단어는 삭제되어야 할 낱말이다. 부재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을 뜻하지만, 실은 우리 자신 우리의 삶에서 온전한 남성성, 여성성, 건강함, 완전함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정희의 소설은 그걸 말하고 있고, 그녀 소설 속의 여성성, 남성성은 불구 그 자체로 온전하다. 그게 삶이라는 것을 그녀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녀 소설 속 화자가 대부분 여자라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오정희는 소설 속의 ‘여성’을 불완전한 하나의 인간이자 삶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일 뿐 여성으로서 특정 짓는 것이 아니다. 화자가 남자인 경우도 그러했던 것처럼. 그건 작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정희의 소설은 여성주의를 넘어서 인간과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초적인 삐걱거림, 불완전함, 불구 그 자체가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불구이고, 이게 우리들의 정상이라고 그녀는 의도치 않고 혹은 의도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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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김종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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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하나같이 격이 떨어진다. 매력적인 인물이 없다. 인물들을 좀 더 매력적이게 그려내고, 대화도 더 맛깔스럽게 쳤다면 소설이 한 층 더 재미있게 읽혔을 텐데 아쉽다. 읽는 내내 격 떨어지는 인물들과 대사에 몰입이 많이 방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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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열병의 계절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김영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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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지내며 어린이 취급을 싫어하던 소녀가 도시를 휩쓸고 간 열병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도 용기를 잃지 않고 남은 이들을 돌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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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잘 자요, 엄마
서미애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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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이 범죄심리학자 답지 않고 매력이 없다. 마지막 부분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날씨를 조장하여 분위기를 으스스하게 이끄는 장치가 너무 드러났다. 많이 실망스러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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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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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여러모로 소박한 소설이다. 그러나 수상작이 아니라 그냥 장편으로 출간되었다면 난 끝까지 읽지 않고 덮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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