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공익과 개인의 이익 사이

 

<우리 마을 이야기>는 1992년 일본 '모닝' 지에 연재된 만화이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발행 된지 20년이 지나서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도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던 <우리마을 이야기>가 왜 이 시점에서 주목 받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만화가 ‘국가주의’와 ‘개발주의’에 저항하는 농민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강정 그리고 다시 밀양을 휩쓸고 간 광기와 폭력들. ‘공익’으로 가해지는 폭력의 작동 방식은 지역과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쌍생아처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리마을 이야기>는 '전후 일본 최대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산리즈카’는 원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1966년에 이 지역이 공항 부지로 결정되면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부는 우선 보상금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끝끝내 보상을 거부하는 주민들에게는 공권력을 행사한다. 이에 주민들과 학생들은 대규모 반대 운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정부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투쟁은 장장 40여년에 걸쳐 진행된다.

 

작가 오제 아키라가 작품을 착수한 1991년은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 문제 심포지엄’을 열었던 시기였다. 작가 역시 이 회의에 참가하는데, 그는 그때 ‘세월의 흐르는 것의 무서움’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인지 만화는 잊혀져가는 투쟁들을 다큐멘터리 촬영하듯 꼼꼼하고 차분하게 기록한다. 이 때 작가의 노력은 단순히 농민들의 투쟁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농민의 삶을 통해 투쟁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려 한다. 농민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반발로 운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공항 건설’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투쟁의 의미를 삶의 존엄성, 민주주의, 생태주의로 서서히 넓혀나간다. '왜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야 말로 나리타 투쟁을 한 시대의 파편화된 기억을 넘어서서 현재성을 갖게 만든다.

 

농민들의 반대 이유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이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농민들의 바람은 투쟁의 본질을 짚고 있는데, 그래서 한편으로 당혹감을 준다. 즉 정부와 농민의 싸움은 ‘공익 대 개인의 이익’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공익을 위한 일인데,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있을까?’,‘공익을 생각하지 않는 지나친 개인 이기주의 아닐까.’ 우리는 과연 이 질문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을까? 공항 건설을 인권과 환경, 민주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공익 대 개인’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이것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며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다. ‘공익에 강요되는 개인의 희생은 어느 선까지 정당한가?’, ‘개인의 권리와 님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정해진 해답은 없다. 공익과 개인의 이익, 이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결국 개인과 소수자들과의 연대는 단순히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공익’에 대한 고민과 성찰도 함께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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