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 윤대녕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1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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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무거워진 선운사 경내는 영산전 목조삼존불에서 퍼져내린 향내로 이틀이나 내내 신비한 빛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향내에 발목을 묻고 나는 생각했지요.

이제 우리는 가까이에선 서로 진실을 말할 나이가 지났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우린 진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달은 지 이미 오랩니다.
그것은 한편 목숨의 다른 이름일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때나, 아무 곳에서나, 아무한테나 함부로 그것을 들이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것은 자주 위험한 무기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멀리서 얘기하되 가까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서로의 생에 대해 다만 구경꾼으로 남은들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

마음 흐린날 서로의 마당가를 기웃거리며 겨우 침향내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만이로도 된 것이지요.


- 윤대녕/ 상춘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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