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김민재.이지완.황정규 지음 / 해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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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지성사, 혹은 진보운동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6.8혁명의 역사적 파장에서 거의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그 열병에 공감한 적군파들이 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를 위한 양동작전으로 일본항공 비행기 요도호를 납치해 평양행을 결행하기도 했으나 미제국주의 속국 이 나라에서는 겨우,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정도에서나 언급되었을 뿐 백성들은 월남전 파병 다녀온 이웃 삼촌이 가져다준 C레이션 먹느라고 바빴다.

그러다보니 월남전 참전을 거부해 챔피언 벨트를 뺏겼던 무하마드 알리가 71년도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조 프레이저에게 지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낙담을 한 이유를 한국사람들만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당시 멀쩡한 지구인들에게 알리는 진보와 괜찮은 모든 것의 상징이었고, 조프레이저는 꼴보수와 황교안, 나경원 뭐 이런 모든 것들이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6.8혁명이 탄생시켰고, 진정으로 서구사회에 충격을 준 발칙하고 불온한 60년대말 여성해방운동과도 완전히 단절되다시피 하였다. 겨우 윤복희라는 가수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더라! 식의 가십기사 정도로 바다건너 저편에서 일어났던 광폭한 6.8혁명과 여성해방운동의 향기가 이 좁디좁은 반도를 지나갔다.

그 시대 사람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행운아인 필자는 2016, 17년 촛불투쟁을 겪으며 몸소 여성해방운동의 당당한 진군을 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촛불항쟁이 갖는 의미는 대중시위를 통해 처음으로 정권을 쫒아냈다는 감격이 컸지만 여성해방운동 관점에서 보면 광범위한 여성대중이 단기간에 대규모 정치적 진출을 통해 급격히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진전시킨, 즉 당시 촛불항쟁 판을 생성하고 유지하고 변화시킨 경험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가까운 운동선배 말마따나 ‘세상에 공짜가 없다.’ 행동한 자들은 어느 경우나 행동의 대가로 호주머니에 청구서를 자동적으로 챙기기 마련이고 그 청구서는 어느 때, 어느 곳이라 특정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촛불항쟁 1주년이 지나 비록 여검사의 폭로로 시작되었지만 이어진 미투운동의 그 폭발적인 공감의 힘은 지난겨울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팔뚝 휘두르며 챙긴 청구서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 청구서를 접수한 사내들 중 한때 유명 짜한 인사들이었는지는 몰라도 평소 행실이 의심스럽던 자들은 패가망신의 길로 내던져졌다. 이렇게 역사적 행동의 대가로 확보된 청구서로 시작독 여성의 도전은 마침내 이 사회에 남성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는 겸손하거나 점잖은 여권신장운동이 아니라 사내들 턱에다 어퍼컷을 먹이는 발칙하고 불경한 해방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운동이 페미니즘으로 명명되었기에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주도하기에 누구는 이를 과잉으로 진단하고 애통해하고, 징집영장 받은걸, 국가유공자 대열로 진입한 걸로 이해하는 못난 사내들은 적대감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미투운동으로 촉발되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페미니즘의 과잉으로 모처럼 일어난 여성해방운동의 흐름이 끝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구체적 증거중의 하나가 바로 내가 소개할 한권의 책이다.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광장의 여성들이 청구서를 받아들고 답을 사회주의에서 찾기 시작했다면 부르주아들에게는 미안한 말로 이제 새되었다는 거다. 책은 간명한 두괄식 어법으로 결론부터 말한다. 여성해방은 자본주의 철폐에서부터 답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바 이지만 페미니스트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이 흥분하면 곧잘 하는 말이 “계급이 어디 있어”라는 거다. 뭐 이런 치사한 방법 말고도 저자들은 페미니즘의 허약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폭로하고 있다. 책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성억압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고찰이다. 물론 이 주제는 엥겔스의 가족, 계급, 국가의 기원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익숙한 주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이를 대단히 혼란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페미니즘의 각 개념들을 차례차례 폭로하고 있다. 특히 한때 히피 운동가이기도 했던 미국 대선후보 클린턴이 선거기간동안 사회주의 후보 샌더스를 공격한 주된 논리인 상호교차 이론을 폭로한 것은 흥미진진하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우리나리에서 최근 페미니즘의 교과서로도 불리만한 주요저서들을 비판 요약한 글들을 수록해 놓았다. 한편으로는 읽은 척 매뉴얼이 될 만큼 잘 요약한 글이면서도 각 작가들의 취약한 논리를 잘 폭로한 글이기도 하다.

저자들의 주장은 수미일관하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역사적이라는 것이다. 계급억압과 여성억압은 동시에 발생했고 생산력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력이 고도화되고 인간이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역사적으로 계급억압과 마찬가지로 종식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를 위해서는 반자본주의 투쟁,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는 투쟁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이고 여성해방은 바로 이 투쟁과 결합하고 이 투쟁속에서 대중의 상상력과 결합해 완전히 평등한 세상으로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폭탄이 되었다. 여성억압을 당연시 하는 세상에 내던진 폭탄이고 결국은 부르주아 사회를 변호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폭탄이며 여성차별을 통해 스스로 결박하는 낮은 의식을 가진 남성들에 대한 폭탄이다. 그리고 맑스주의를 향하는 좁디 좁은 길을 대로로 내기 위한 폭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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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ine0615 2021-01-0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 이후 대한민국 내에서 대규모의 여성들이 길거리로 시위하러 나온 대표적인 예시는 박근혜 퇴진시위가 아니라 광우병 수입반대 시위 당시의 유모차 부대 아니던가?

ondine0615 2021-01-03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문장에 비문이 너무 많습니다 정독했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문장이 많아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