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디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2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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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때는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다 알 것 같기도 해 약간 김 빠지는 듯도 했다. 곱씹을수록 정리가 되기는커녕 머리속이 더욱 헝클어지는 느낌이었다. 주인공 호아킨처럼. 

라디오DJ 호아킨의 개인사와 그가 진행하는 <고스트 라디오>의 청취자 사연이 번갈아 등장하는 이 소설은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 다문화(멕시코 문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얽히고설키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고스트 라디오>의 매력이자 혼란,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이 책이 장르의 내러티브와 클리셰를 적절히 따르면서 변칙을 주는 전통적인 장르소설의 범주에 속하기보다는 차라리 미국 그래픽노블을 문자로 "읽는" 듯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래픽노블 작가이기도 한 레오폴도 가우트가 스케치를 하다가 소설로 발전시킨 <고스트 라디오>는 장르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내적 개연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를 별 의미 없게 만든다. 읽는 내내 명멸하고 겹치는 이미지에 홀리다보면 마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나 <샌드맨> 류의 그래픽노블을 보는 상태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고스트 라디오>에 등장하는 멕시코 문화와 톨텍 신화라는 이종문화의 세례, 그리고 해적방송, 플래시몹, 고스족, 펑크 밴드, 언더그라운드 만화 등 다른 미디어와의 결합, 도시괴담의 변용은 흥미롭다. 하지만 가장 큰 의외성이자 재미는 라디오 전파에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폰 시대에 낡은 미디어인 라디오와 전파가 소설의 근간에 자리할 뿐더러 단순한 통로에 그치지 않고 어떤 존재나 에너지의 근원으로까지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전파는 공기나 에테르 같은 매개체가 없어도 전달된다는 점에서 그 끝은 지구나 이승에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장르의 틀에 얽매이면 시시해 보이지만 그 틀을 떨쳐내면 정신없이 빠져들 만한 책. 다 떠나서 청취자 사연으로 소개되는 도시괴담들만으로도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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