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생각했다.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같은 종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할 수는 없는 사람 같았고, 동료 인간과 겉모습은 같지만 기본 특징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 P10
퍼시는 킁킁 냄새를 맡을 때면 세상 모든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으니까.퍼시는 병이 날 때마다 이겨내고 또 이겨냈으니까,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이겨내고는 떠났으니까.-메리 올리버 "나는 나의 개 퍼시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부분,개를 위한 노래, 민승남 옮김, 미디어창비 2021, 57면. - P147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팔랑팔랑, 느릿느릿 걷는 매일매일이 쌓이는 동안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모든 것의 이름 또한 틀림없이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저마다의 빛을 품은 채 자라고있다. - P142
이 사람들은, 소설 속의 이 인물들은 현실에서 취한 인몸도 물들일까요? 이들은 육체적으로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나 실제 인물에 기반을 둔 것일까요? 이들의 행동과또는 말버릇은 현실에서 취한 것일까요? (…) 소설말속의 많은 인물들, 혹은 대부분의 인물들은 당연히 현실에서 가져온 인물들입니다.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다라 해도 아주 많은 부분을 가져온 인물들인 것입니다. - P185
유리병이 아름다운 것은 섬세하고 연약한 물성을 지녔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견고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그것은 구겨졌다 펴지는 대신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는 성질을 지녔고,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도하고 관능적이다. 참기름이나 후추처럼 일상적인식재료를 품은 병들조차 찬장 구석에 박혀 있을지언정 빛을 받는 순간 언제고 보석처럼 영롱히 반짝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