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조련사와의 하룻밤 - 어른들을 위한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
김도언 지음, 하재욱 그림 / 문학세계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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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동화'라 빨리 그리고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었다. '어른들을 위한 이상하고 부조리한 동화'라기에 제목만 볼 때는 코끼리 조련사라는 설정도 특이하고 하룻밤이라는 게 살인이 일어날 것만 같은 잔혹 스릴러물인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그림체 또한 내용과 잘 어우러진,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성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느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어른들을 위한 책이라는 게 바로 느껴질 만큼 부조리한 단편 동화가 7편 나온다. 저자는 인간을 지배하는 성에 대한 욕망과 폭력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했고, 몇몇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했는데 이는 독자가 자기 자신을 투사해 보기를 기대한 저자의 생각이라고 한다. 외설적이고 적나라한 성과 폭력의 실상을 동화로 풀어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간의 욕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와 다르게 이러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며, 우리를 보듬어 줄 수도 없다. 오히려 현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다.

대부분 무너진 성 윤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제일 먼저 나오는 <사색하는 물푸레나무> 이야기는 '수저론'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 외에도 낮에는 유능한 공기업 임원으로 일하지만 밤에는 매춘을 하다 살해되는 일본인 여성 이야기, 중학교 기간제 여교사가 제자인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사건 등이 있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불편하면서도 전혀 낯선 느낌을 받지 않았던 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들의 기사를 쉽게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은 동화보다 더 잔혹할 수도 있다. 욕망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숨겨야만 하고 나쁘게 치부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아직은 쿨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코끼리 조련사와의 하룻밤'은 코끼리 조련사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살해당하지만, 여성은 그때야 비로소 '가장 진실에 가까워진 순간'이라고 느낀다. 이러한 부분들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30 <사색하는 물푸레나무>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하는 건,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의 가장 큰 의무입니다.

64 <친구의 죽음이 알려준 것>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은 무언가를 가졌거나 얻었던 경험보다 언제나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140 <구두에 대한 어떤 견해>

구두는 사람 몸의 맨 끝인 발과 그 발의 방향과 설움을 감쌌던 것이어서 장마철일수록 잘 닦아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168 <언제나 전야의 밤>

진실이 대형마트에서 똑같이 포장되어 팔리는 상품은 아니잖아요. 당신은 그런 삶을 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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