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 나무 숲으로
황영숙 지음 / 한국문연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선풍기





홀로 앓는 열병이
바람이 된
너의 날개는 오늘도
안타깝다

아무도 허락할 수 없는
사랑의 굴레 속에
줄 수 있는 건 오직
흔적 없는 바람뿐

돌면서 젖어 가는
돌면서 무너지는

아무리 날개가 커도
너는 갇힌 새다.





 

 

 


<똑바로 걷기>

하이힐의 둣굽이 닳아져
지하상가의 구두병원에서
새것으로 갈았다

자칭 구두병원의
원장이라는 아저씨는
한쪽은 아직 쓸 만한데 한쪽만
닳은 게 이상하다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새삼 나의 걸음걸이에
신경이 쓰였다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걸음걸이가
삐뚤어진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걷기 연습을 했다
어떻게 걷는 것이 바로 걷는 것인지
걷기를 거듭할수록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갑자기
걷는 것이 두려워졌다.


 

 


성급한 그대






뭐가 그리 급하니?
하늘에 저 구름도 그냥 있는데

지구는 둥글어서 돌고 돌아오는데
뛰어 봐도 그 자리 날아가도 그 자리

뭐가 그리 급하니?
아직 저 꽃 저리 아름다운데
성급한 바람이 저질러 놓은 일을
안달하지 마로
고개 돌려 잠시 꽃이라도 보고 가

하늘은 한평생 그 자리에 있어도
세상일 조용히 감당하지 않니

성급한 그대여
쉬엄쉬어 가도 우리는 모두
한곳에서 만난다.

인적 없는 길모퉁이 한 켠에 뿐곷이 피었습니다
이목구비 뚜렷한 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고 싶어 피었다네요

그냥 '분'이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이상해서 꽃이
되었다 해도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
분꽃입니다
당신이 나를 단 한 번만이라도 보아만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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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숙

경북 경산출생
1990년 <우리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대구문협 부회장과
대구 시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음


(문단데뷔 20년 만에 시집이란 것을 내 놓는다며 어찌나 부끄러워하는지,

어찌나 수줍어 하는지,..

시를 읽으며 시인의 인품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시에 감동받고야 말았다.
책값 8000원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간만에 정말 좋은 시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시인들의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깨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좋은 시가, 시집이

단지 유명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지 몇몇의 지인들의 서재에 먼지 쌓여가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 될겁니다.

 

김소월 이후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등극하길 바라고 바랍니다.

친구님들 차 한잔 덜 마시고 이 시집 한 번 사보세요^^

 

이곳에서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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