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코의 질문 - 개정판, 6학년 2학기 읽기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3
손연자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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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 미안해요. (마사코의 질문)

 

  진홍색 기모노를 입고 있는 여자 아이.

우연히 서점에서 이 아이를 만났다면 글쎄......,

나는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제 아무리 이름 있는 상을 받고, 교과서에 실린 글이라 할지라도

어둡고, 슬프고, 이미 귀동냥만으로도 여러 번 들어보았을 법한 넋두리를

굳이 손을 뻗어 넘겨보지 않았을 테지.

 그런데,

뻔하고 교훈적이며 들춰내 보았자 아프기만 할 이 책, 첫 장을 펼치던 순간

나는 예기치 못했던 복사꽃 향내에 그만 홀려 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웠습니다.

꽃잎 같은 글귀들, 비단같이 매끄럽게 풀어내는 글솜씨가 아름다워서 혹독한 세월마저도 찬란하게 슬펐습니다.

처음 가진 호감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이쁜 것, 현란한 재주는 잠시라고 하더군요.

어찌하여 나는 으스름 새벽달을 볼 때까지 책을 놓지 못했을까?

화르르’, 여린 꽃잎의 섬세한 떨림이 어떻게 아직까지 계속 남아 있는 거지?

그 울림을 탁월한 글솜씨, 아름다운 문장만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어쩐지 허전해 보입니다.

가만히, 곰곰이 머물러 보았지요.

 ........ 지극정성.

그랬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러하더군요.

방구 아저씨와 은옥이 옆에서 같이 아파하고 말없이 눈물을 훔치던 글쓴이의 정성이 보였습니다.

한 발짝 물러선 우리네가 잠깐 내보이다 마는 연민과는 다릅니다.

처절한 생사의 현장마다 두 발을 꿋꿋이 딛고 함께 울어 주는 진심어린 공감, 그분의 애절한 눈길이 글글마다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한숨이 터집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나갈수록 마디마디가 저려 왔고, 한없이 외로웠습니다.

동화 한 편의 괴력이 참 무서웠지요.

책을 덮고 뒤늦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와 뒤섞여서 창백한 독방을 헤매었습니다.

  게다가 눈앞에서 우르르 무너지는 현실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불신과 두려움이 우리를 더 처참하게 짓밟았다는 것에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물론 정의의 화살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무자비한 앙갚음이 쏘아 올린 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우리를 겨눌 것입니다.

마지못해 한 발짝을 내디뎠을망정, 그래도 용서라는 소쿠리를 슬며시 밀어주니, 데라우치 선생 같은 냉혈한 인간마저도 무릎 꿇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고통들...... 1945년 그 해 여름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35년간의 칼자국이 남기고 간 후유증과 과제까지 잊지 말아 달라고  행자와 마사코가 부탁하더군요.

  마사코가 던졌던 통쾌한 질문과 비유를 다른 화자의 입을 빌려 들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왠지 이 시시비비가 어린 마사코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뜬금없는 비약 혹은 전체적인 흐름에서 살짝 빗나간 우화 같다는 잔상이 남았거든요.

 

  드디어 책을 덮었습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안타까운 마음도 슬슬 피어납니다.

구구절절, 행간마다 철자를 넘어서는 골 깊은 하소연과 은근한 속내들이 넘쳐 나는데, 행여나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했을까 봐...

그래서 작은 욕심도 부려 봅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조금 더 자랐을 어느 날쯤, 다시 마사코를 찾아봐 주었으면 하고요.

  사실 이 과거사들을 읽는 내내 절절한 고독, 섬찟한 공포, 아픔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은......,

나도 당신 옆에서 함께 울고 있어요.’ 라는 듯, 글쓴이의 따스한 위로가 글글마다 울려 왔기 때문이었지요.

 어쩌면 그랬을까요.......

초록물에서 다시 태어났던 소녀, 은옥이도 그 토닥거림 때문에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겉으로만 맴돌았던 제가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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