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지성과 지식의 차이는 '자기반성 및 자기성찰'이 있느냐의 차이다. 어떤 현상이나 이론을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에 있어서, 지성과 지식의 의미는 다름이 없겠지만, 그 차이는 그 지적 지식을 자신의 삶에 어떠한 형태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구별할 수 있다. 즉 지식의 유무가 아닌 지식을 삶에 어떤 형태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지성주의'는 '반지적주의'가 아닌 '반권위주의'인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학력과 사회적 계급에 모두 상관 없이 모두가 '평등히' 자신의 생각대로 살 자유가 있고, 삶을 향유할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반지성주의는 특정 고학력 집단이 한 사회 권력을 장악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다양한 계층의 삶과 방법을 인정하며, 국민들의 삶 속의 '작은 정부'를 지향해 나간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역사이며, 기독교 문화로부터 생겨난 개념으로 미국의 모든 생활전반에 뿌리깊게 자라나고 있는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물론 미국 안에서 기독교 문화가 계속해서 변이하고 다양한 종파로 나눠지고(본질은 다르지 않지만), 종교가 세속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미국이 자행했던 다양한 잘못들이 많기도 하지만, 일단 이 문제는 차치하고 본다면, 반지성주의는 우리 한국에서도 배울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원래부터 양반, 귀족 세력이 2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역사도 있고, 우리나라 민족자체가 똑똑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미 사회 안에서 '엘리트주의'가 성행하고 있고, 그것이 당연히 정답인줄 아는 세태가 만연하다. 특히 'SKY'라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야 인생을 펼 수 있다는 이분법적인 성공법칙은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인생이 낙오된다는 인식으로, 그 길을 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패배감에 찌들어 살게 만드는 세태를 속출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한국 권력자들의 부패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젠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한지 꽤 오래됐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될 것은 SKY 대학이 잘못 됐다는게 아니라, 명문대의 다수 졸업생들이 나라의 권력과 고위직업을 장악하고 권력과 유착관계를 맺어 간다는 현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 안에서는 '자기비판'이 부재하기 마련이고 부패가 생긴다는 결론은 물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세상에 하나의 방법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미디어와 자본가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성공을 모두 '하나의 길(자본이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흔히 말하는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아 전문직과 가까운 희소성 있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을 걸어야 한다고 제창하며 그 길을 걷지 않는 다양한 성공의 사례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지방대', '전문대', '고졸', '지방' 등등.. 이러한 단어들은 '다양성'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닌 다수와 권력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열등과 부정적인' 인식에 가까운 언어로 쓰이고 있다. 또한 많은 서민들과 소수 계층들은 알게 모르게 있는 자들에게 '상징폭력'에 시달리게 되는 문화가 계속해서 되풀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높은 우울지수와 자살, 갑질이 성행하는 것이 아닌가 반추해 볼 수도 있다. '반지성주의', 참 한국에서도 필요한 개념인 것 같다. 현재 자본주의 안에서 부패하고 모순덩어리인 사회체제를 바꾸려고 여러가지 시대를 하고 있지만, 그 방법은 왠지 모르게 잘 해결되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학 4년제를 나오지 못하면 안되고, 기왕이면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좋고, 이왕 그 길을 걸었다면 대기업에 취업해 사는 것이 정석으로 통한다. 나 또한 대학을 자퇴하는 삶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렇지 않는 삶은 나에게 큰 위험을 줄걸 너무나 잘 아니까 두려운 것이고, 그런 학력조차 없으면 사회에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아니까 진정 내가 하고싶은 일은 뒤로 한 채 대학 졸업에 연연하고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바로 '반지성주의'에 입각한 '제 3의 길'인 것이다. 제 3의 길이란 세상의 유행과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길을 따라 또 다른 인생 길을 마련하고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자신의 자아실현을 꿈꾸고 이루며 행복한 자신만의 길을 살 수 있도록 토대가 되는 새로운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꼭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고졸이거나 중졸이어도, 지방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어떠한 무시를 받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기술과 직업을 택해 살 수 있도록 그런 사회와 방편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런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자고 모두 다같이 학력과 공부를 쌓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을 먼저 바꾸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반지성주의적인 학식과 지식을 갈고 닦음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않고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충분한 지성과 실력, 자신감을 꾸준히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에서도 필히 이러한 반향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러한 반향을 일으킬 새로운 인재와 젊은이는 없는 것일까? 또한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나 또한 젊은 세대로서 그런 인재가 되기 위해 계속 발돋움을 해야겠지. 나 비록 부족할지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자 노력해야겠지. 언뜻 보면 반지성주의는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개념의 내면에는 우리 한국인들도 꼭 알아야 하는 인생의 중요점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정말 많이 알아서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 사례를 인정하고 다양한 행복이 공존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 또한 나의 고정관념과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책을 좀 읽는다고 남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월의식 내지 엘리트주의. 이처럼 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난 후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엘리트주의에 깊게 빠져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자기성찰이 얼마나 인생에 있어 필수조건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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