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달타를 읽고 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 (첨부#1)
싯달타를 읽고 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
꽤나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 였다.
책이 얇고 , 이야기가 너무 어렵지도 길게 끌지도 않으며 적절한 속도로 전개되고 있어 읽기가 쉬웠는지는 모르나 진리의 깨달음을 얻은 싯달타를 보면서 평범한 인간일 뿐인 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팠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런 생각들도 결국은 다 필요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인생무상과 같은 느낌도 받았다.
아직도 많이 혼란스럽기에 페이퍼를 작성하기가 조금 겁이 나지만 머리 속에 엉기성기 얽혀있는 생각의 매듭들을 풀어내고 싶다.
싯달타는 어릴 때 어떤 진리의 뜻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사문의 길로 들어서 사문에게 많은 배움을 얻었지만 그것 또한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친구와 헤어져 자신 스스로의 길을 간다.
완벽한 성도자라고 불리던 고오타마 붓다에게서도 마음을 적시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버렸던 마을로 돌아가 카마라 라는 아름다운 여자와 카마스바미 라는 상인을 만나고, 그들을 통하여 세속의 즐거움도 쾌락도 맛보게 되고 자신 또한 좋은 옷과 좋은 집 등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또한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자살 직전 깨닫게 되고 뱃사공인 바수베다와 함께 강을 스승삼아 많은 깨달음을 얻어간다.
싯달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진정으로 깨닫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깨닫는 것일까 나는 싯달타가 얻은 깨달음이 끝내 무엇인지는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다.
다만 그것이 결코 우리가 말하는 물질과 배부름에서 오는 ‘행복’이라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며 그것에서 벗어나 마음속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안식처를 가지고 어떠한 스승도 자신을 가르칠 수 없으며 깨달음이란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 정도만 감이 잡힌다.
싯달타를 읽으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난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이라는 법정스님의 깨달음. 미쳐 깨닫지 못했던 것을 전해 듣고 나서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소유하고 가지는 것에 대하여 집착하고 있을까.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싶어 하며 좋은 차를 차고 다니며 좋은 집에서 살기를 원한다.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더 많은 것을 위하여 공부하고 직업을 가지며 돈을 버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좋은 옷을 많이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고 내가 없는 것을 친구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 역시 부러워한다.
좋은 옷을 많이 가지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것이 결코 아님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 어쩌면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이라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함이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나 또한 보통의 인간들과 다름없이 그러해 왔고 나는 아직도 예쁜 옷이 입고 싶고 멋진 집에 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무소유를 주장하며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유의 얽매임을 느낀 법정 스님이나 싯달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 하지 않음으로 해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물질로 인해 계산적으로 사람을 보던 눈이, 자신의 것을 버림으로 해서 물질 잣대로도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며 항상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었던 싯달타의 자세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무소유라는 것이 가지지 않는 다고해서 궁핍한 빈털터리는 아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버리고도 내면적인 행복과 자아실현을 완성했던 것이다.
또한 싯달타는 세속에서의 많은 물질과 소유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며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끝없이 자신을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찾는다.
혹은 자아 발견을 한다.
라고 이야기 하고 그를 위해 노력한다.
발견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살펴보아 찾아낸다는 뜻으로 마음속 깊이 있는, 아직 잘 알지 못 하는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찾는다와 버린다는 거의 반대의 개념인 것 같은데 여기서 둘은 어떻게 저마다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자아를 끝없이 버리고 또 버리고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찾고 있는 자아는 버려야 할 거짓자아인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정체감 상실 즉 실의에 빠져든다고 이야기 한다.
헌데 자아를 버리라니 싯달타처럼 모든 어려움을 견뎌 내고 마침내 무한한 깨달음을 얻는 위대한 자가 아닌 보통의 인간과는 연관이 없는 말과 같이 들리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ㅠ_ㅠ
싯달타는 교육적으로 본다면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람이 낮은 차원에 있는 사람을 끌어주는 즉 속세에 있는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높은 차원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 여기서 높은 차원과 낮은 차원이라는 단어선택이 잘 된 것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높다.
낮다 특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와 지식이든 깨달음이든 높고 낮음은 있다고 생각한다.
)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것도 지식을 얻으려 하는 것도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한걸음 더 내딛고 내딛어 올라가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식을 얻고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만은 않다.
내가 지식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 하며 그것은 아무도 노력이라는 대가 없이 얻을 수는 없다.
즉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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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싯달타를 읽고 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 (첨부#1)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3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싯달타를 읽고 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
파일이름 : 싯달타를 읽고 나서 싯달타를 읽고나서.hwp
키워드 : 싯달타를읽고나서싯달타를읽고나서,싯달타,읽고,나서,싯달타,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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