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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1.
오은 시인님의 다독임을 읽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인상은, 예전에 시인님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느꼈던 감각이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다.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을 눈여겨보다 보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나누는 심상한 얘기를 듣고 있으면,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나를 휘감았다."(90쪽) 를 읽으며 왜 이런 기분 좋은 인상이 내게 남았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주변뿐만 아니라 단어를 곱씹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쓴 산문이라는 점이 재밌다. 단어로 놀이를 하는 사람답게, 어떤 한 단어에서부터 시작되어 확장되는 글들이 많았다. '입고프다', '실패', '떼부자ㅡ때부자', '아직', '여유', '~만하다', '자괴감', '옆'과 '곁', '힘입다' 등 아주 많은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2.
4월에 이 책을 읽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쓴 글들이 순차적으로 엮여있다. 그래서 반복되는 4월, 기억하기 위한 글들이 있다. 3일 전인 4월 16일에, 나는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세월호라는 말을 잊고 살다가, 고작 하루 제대로 기억하고 슬퍼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가 "기억한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배웠고, 외면은 거짓말이 창궐할 수 있는 환경을 공고히 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산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잊으면 안 된다. 문제의 근저를 이루는 요소들을 어떻게든 계속 상기해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세월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거짓말을 파헤치고 그 아래 있었던 각종 추악한 장면들을 직시해야 한다. 외면과 무관심은 거짓말이 계속해서 창궐할 수 있는 환경을 공고히 할 뿐이다." (100쪽)
그뿐 아니라, 많은 문장에서 자주 멈춰서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문장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위 사진처럼 떠오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책 귀퉁이에 적어놨다. 자주 멈춰서 친구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미루던 답장을 하기도 했고, 전화를 걸기도 했다.
3.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문학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서 그럴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도 삼고 싶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며 문학 하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많이 상상해보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 '잘사는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서 하는 것'(120쪽)일까, 문학은. '내가 슬플 때 누군가 나처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서, 슬프면서 좋은 것'(147쪽)이고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연대하게 해주는 것'(262쪽)일까. '내가 많이 쓰는 단어는 무엇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줘서 나를 잘 알게 해주는 것'(163쪽)일까.
'잘 익은 벼 한 모숨이 잘 지은 밥 한 공기가 될 때까지 여러 번의 ‘제대로'를 통해 밥심이 생기는 것처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익어서 사람의 힘이 된다'(61쪽)고 했을 때, 나는 ‘책’을 떠올렸다. 문학은 그런 힘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