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김인환 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이 책을 읽었다. 표지처럼 산뜻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책일 것으로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서 책을 폈다. 그리고 서문을 읽다가 놀랐다. 글자를 읽었지만 읽히지 않아서 (!!). 이렇게 읽을 책이 아니구나 싶어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읽었다. 그리고서도 계속 책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서 조금 헤맸다. 그러다 알았다. 이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조용한 카페에 가지고 나가서 한 챕터씩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을.



2.

이 책은 독서의 가치, 동학, 중세 철학, 과학기술, 라캉 등의 주제로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꼭지마다 주제에 관해 넓은 범위를 포괄해 말하면서도, 본론으로 들어가면 깊게 탐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말해주는 것 같다. 깊다는 것은 무한한 맥락으로의 확장이었다. 첫 번째 꼭지 「독서의 가치」에서 "하나의 작품은 동시대의 또는 이전 시대의 작품들과의 연결 관계 속에서만 이해된다. 어느 책도 다른 책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무한한 맥락'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저자는 매 꼭지 이 '무한한 맥락'에 따라서 논리를 진행한다. '동학'과 '니체'가 연결되고, '기독교'와 '유교'가 연결되고, '릴케'와 '한국의 시인'이 연결된다. 나에게 쉽게 읽히는 문장은 거의 없었지만, 이 무한한 맥락의 신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 책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느꼈다.



3.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중세철학(중에서 기독교 철학), 특히 에카르트에 관한 부분이었다. 신에게로 간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가지게 되는 것',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특히 재미로 하면 안 되고, 메마름을 견디며 어두움 속에 버려져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때 기독교인이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정말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것을 봤지만, 나 스스로도 어떤 모순 속에 있고,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하는 회의 속에서 기독교와 조금씩 멀어져 왔다. 이 글을 보면서 '종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갖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한 사람이라도 "무욕과 무지 속에서 사랑만이 홀로 정화의 어두움 속에서 타오르며, 영혼이 비로소 하느님과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앙을 바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 정치는 특별한 정치가가 잘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음양 허실에 따라서 가난할 때는 산업화를 보하고 중화학 공업이 가동된 뒤에는 민주화를 보하여 이만큼 발전한 것이다. - P139

릴케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갈등과 대립, 불안과 가식에 시달리면서도 성내지 않고 부드럽게 죽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불완전한 동물이다. - P90

말의 논리 위로 낯을 들고 일어설 수 없었던 어두운 희망이 문학을 문학으로 규정하는 힘이며 이 희망은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다. - P184

무는 ‘없다‘는 의미의 명사가 아니라 ‘지운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 P65

정진의 정 자는 알뜰할 정자이고 진 자는 걸어나아갈 진 자이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불교의 정진이다. - P55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의 과제를 수행하지만 그는 동시에 동시성과 완전성을 지닌 영원에 참여하고 있다.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