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 -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김진애 지음 / 서울포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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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펼치니 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에 먼저 눈길이 간다. 'MIT 건축 석사 및 도시계획 박사' '대통령자문 건설기술ㆍ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장' '1994년 미 <타임>지가 뽑은 '차세대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 등등 무려 19줄에 이르는 저자의 이력ㆍ경력. 하지만, 그보다는 '김진애너지'라는 별명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 김진애. 잠시라도 함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가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건축가 김진애씨가 지난해 8월부터 같은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글과 <인물과 사상>에 실었던 글을 다듬고 엮어 <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서울포럼ㆍ이하 <공간정치 읽기>)를 펴냈다. 그의 별명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다. 도시건축 전문가로서의 현장 감각과 실천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내공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힘 있고 거침없는 그의 글쓰기 덕에 어떤 글보다 쉽게 다가온다. 

공간정치(Space Politics)란 무엇인가. 저자는 '공간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정치'로 풀이한다. 동어반복 같다. '공간'에 관한 그의 생각과 '정치'에 대한 그의 정의를 이어보면 그 뜻이 좀 더 또렷해진다.

'공간은 중요한 사회 인프라 중 하나…… 경제를 담는 것도, 산업을 담는 것도, 일자리를 담는 것도, 삶터를 담는 것도, 관광을 담는 것도, 문화를 담는 것도, 지역균형을 담는 것도, 즐거움과 행복을 담는 것도 다 공간이다. 공간은 모든 국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관계되며, 공간은 '부동자산'이고, 한번 만들면 오래가는 '장기자산'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사회 인프라다.'('이명박식 공간정치의 함정'에서)

'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지혜롭게 배분하는 기술이며,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고 줄이는 행위이고, 정치란 다양한 이해집단의 균형적 관계를 세우는 행위이며, 정치란 사회 약자와 소수자도 행복하게 해주는 기술이며, 정치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행위이다.'('머리말'에서)

따라서 저자에 따르면 공간정치의 주체는 '공간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들', 즉 '모든 시민'이고, 공간정치의 핵심은 '누가, 누구를 위하여, 왜, 어디에, 어떻게, 무슨 공간을 만들고 누리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좋은 공간정치'와 '나쁜 공간정치'를 나누고 있다. <공간정치 읽기>를 펴낸 취지도 '우리 모두 공간정치에 눈을 뜨고, 나쁜 공간정치를 경계하고 좋은 공간정치를 실현하자'는 데 있다.

좋은 공간정치를 위한 시민의 몫

<공간정치 읽기>가 읽어내는 대상은 청계천, 시청 앞 광장, 용산공원,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ㆍ혁신도시, 뉴타운, 한반도 대운하 등 주요 프로젝트들과 주택문제ㆍ부동산문제 등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주요 프로젝트들의 정치적 동기와 정책적 목표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주제임에도 앞서 얘기했듯이 저자의 내공과 글 솜씨가 어우러져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명쾌하게 풀려나간다.

저자는 공간정치가 새삼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대통령 당선인)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책의 첫 주제도 '이명박식 공간정치의 함정'으로 잡았다. 이명박 전 시장 시절의 시청 앞 잔디광장, 청계천 복원 사업 등을 '스펙터클 공간정치의 원조'로 규정하고 그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심지어 서울광장에 대해선 공공 공간을 사유화한 '이명박의, 이명박에 의한, 이명박을 위한 잔디광장'으로 '잔디 독재'라고 비판한다('서울시청 앞의 '잔디 독재'').

그 밖에도 저자는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사업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명품 중독증'을 지적하고('오세훈 시장, 명품을 벗어라!), 용산공원 건립 사업에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기싸움'을 따져 묻고('용산공원에 얽힌 '기싸움' 정치'), 뉴타운 개발사업에서 1970년대식 뻥튀기 개발 정책의 한계를 짚어낸다('뉴타운 개발사업의 딜레마'). 또한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도 8가지 상식적인 질문을 통해 그것이 '대재앙계획'으로 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업'인지를 드러낸다('한반도 대운하, 상식으로 판단하자').

살펴본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공간정치'를 하기란 쉽지 않다. 공간정치를 직접 시행하는 선출직이 '표의 눈치'를 살피고 '돈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 때문이기도 하고(''돈'과 '표'로 망가지는 도시'), 공간정치가 부정ㆍ부패ㆍ부실ㆍ비리 등 이른바 'ㅂ'자 돌림병과 얽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부정ㆍ부패ㆍ부실ㆍ비리로부터의 자유').

저자는 좋은 공간정치를 위해 건강한 언론의 힘을 기대하고, 공공계획가ㆍ공공건축가의 힘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좋은 공간정치를 격려하고 나쁜 공간정치를 경계하는 것은 결국 공간정치의 주체인 시민의 몫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공간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이끄는 대통령과 지자체 장은 공간정치의 가장 핵심이 되는 주역들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시민의 힘이 있다. 시민들이 좋은 공간 가치를 지향하고 좋은 공간정치를 요구할수록 우리의 공간은 더욱 좋아지고 우리의 공간정치 수준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사람이 가장 먼저다'에서)

저자 역시 전문가이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 글들을 쓰고 책을 펴냈다. 저자의 좋은 공간정치를 위한 글쓰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최근 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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