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의 글쓰기 - 글쓰기의 시작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혹시나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이 담겼을까 하고 중고 서점에서 건져온 책이다. 사 온 지는 한 달쯤 됐을까. 책 읽기를 어영부영 미루다 이제야 다 읽었다. 책에는 내가 원했던 글 잘 쓰는 기술 같은 건 없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난감했다. 내가 글쓰기 교육과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닌데, 이 책이 나에게 유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선 읽어보자 마음먹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글쓰기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가끔 쓰는 글은 책에 관한 글인데, 정작 나에 대한 글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쓰는 글 말이다. 그간 생생한 삶이 없는, 죽은 글만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중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 참가한 적 있다. 말이 참가자지, 전교생들이 모두 반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행사였다. 반강제적으로 참가하는 탓에 다들 글 쓰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렸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시를 써내야 했다. 내용은 대충 쓰고, 글자 수를 비롯해 시의 형식을 맞추려 낑낑댄 기억이 난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들 이런 기억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과연 올바른 글쓰기 교육 방식이었을까. 아무튼 저 날 이후로 '시 쓰기'는 나에게 머리 아픈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을 읽는 데 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책에서 그려진 글쓰기 교육의 환경이 갖는 온갖 어두운 면이 내가 겪었던 현실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책에서 저자의 '아이들'과 '글'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졌다. 위선적이기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이었다. 늘 아이들의 입장에서 말한다고나 할까.


책에 수록된 아이들의(현재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겠지만) 천진난만한 글들이 읽기에 좋았다.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판치는 오늘날에 읽기 딱 좋았다. 물론 아이들의 글에서 배울 점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거나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꼭 일독 권하고 싶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코로 하지만 마음의 숨은 표현으로 쉰다. 더구나 아이들의 표현은 아이들의 생명을 이어가고 생명을 키워 가는 귀중한 수단이 된다.


p30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글을 쓸거리를 찾고 정하는 단계에서, 쓸거리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가운데서, 실지로 글을 쓰면서, 쓴 것을 고치고 비판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삶과 생각을 키워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p55



글쓰기는 국어과의 한 작은 갈래가 아니다. 글쓰기는 모든 교과와 삶에 이어지고, 모든 교과와 삶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교과다. 따라서 글쓰기 교육은 국어 시간이나 글쓰기라는 특정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한다고 보아야 옳다.


p83



삶의 글은 삶의 말로 써야 한다. 삶의 말은 나날이 쓰는 정다운 우리들의 말, 나 자신의 말이다. 빌려온 말, 유식을 자랑하는 말, 남의 말이 아닌 쉬운 우리 말이다. 사실을 보여주는 말,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바로 와닿는 말이다.


p115



'수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학업을 가르쳐 준다는 말, 곧 어른의 처지에서 하는 말이다. 배우는 아이들의 말로는 학습이라거나 공부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선생님들이 공부니 학습이니 하는 말보다는 수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아이들에게도 예사로 수업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지 말 하나를 옳게 쓰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고 교육을 한다는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잊어버리고 자기중심으로 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보기가 된다.


p226



아무리 좋은 생각을 말하더라도 그 말 자체가 어렵고 공중에 뜬 말일 떄는 그 생각이 죽은 관념으로 되어 버린다. 흉내를 잘 내는 우등생은 삶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죽은 관념을 재빨리 암기하는 재주를 보인다. 바로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p230



글을 쉬운 말로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터인데 도리어 부끄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써 놓은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p3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